2025년 08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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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 글쓰기의 시작을 가르쳐준 대학신문은 이미 1957년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를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길을 개척했습니다. 이는 주시경의 가로쓰기 주장을 계승한 조선어학회의 노력과도 연결됩니다. 조선어학회는 일제강점기에도 한글 가로쓰기를 실험하며 민족어 보존에 힘썼고, 해방 후 첫 한글 교과서에도 가로쓰기를 채택했습니다.

전통적인 세로쓰기와 국한혼용이 일반적이었던 당시 사회에서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는 급진적인 변화로 여겨졌으며, 일부 보수적인 관점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한국어와 문화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습니다. 특히, 한자 사용을 고수하려는 국한혼용론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비판하며 한글 전용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신문 기사 내용에서 조사를 뺀 나머지 말들 대부분이 한자였던 시절에 한글 전용 신문을 최초로 선보인 것입니다.

이러한 대학신문의 혁신적인 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긍정적인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는 정보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고, 현대적인 출판 환경에 적합하다는 인식이 확산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이후 다른 신문과 출판물에도 영향을 미쳐, 1988년에는 ‘한겨레신문’이 한글 전용·가로쓰기를 채택한 신문으로 창간되었습니다.

지면 신문은 굵직한 기삿거리가 생기면 연재물에 대해서 ‘지면이 한정되어 다음 주로 미룹니다.’라는 사고로 연재물의 빈자리를 채웁니다. TV에서도 마찬가지로 특집방송이 끼어들면 기다리던 연속극은 자리를 비워줍니다. 지면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독자나 시청자는 불편을 감수했습니다.

인터넷은 지면과 시간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면 신문은 모두 인터넷 매체를 만들어 상세기사를 늘리고 제한된 지면을 극복했습니다. 마치 필름을 장착해서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던 카메라가 디지털카메라로 바뀌면서 많이 찍어서 잘 된 사진을 하나 고르는 형태로 바뀐 것과 같습니다. 물론 존댓말을 쓴다고 그리 많은 지면을 더 쓰는 것도 아닙니다.

방송은 존댓말로 시청자와 만나지만 유독 신문은 반말로 독자와 만나는 것을 고집합니다. 반말은 간결하고 가독성을 높여주고 명확한 의사전달을 위해서 사용한다고 하지만 계몽주의 영향을 받은 점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판결문은 시대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조선시대에는 국왕이나 수령이 판결을 했습니다. 당시 나라의 주인은 왕이었고, 왕이 백성에게 판결을 할 때 반말을 사용해야 자연스러웠습니다. 일제 강점기 직후에는 일본 판결문을 참고하여 판결문을 작성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자를 같이 쓰는 일본 판결문을 참고하다 보니 우리 판결문에도 한자를 같이 썼습니다. 이후 법원에서 판결문을 한글 전용으로 하겠다고 발표하자, 많은 법조인이 법원의 권위가 떨어지고, 판결의 내용 전달이 어렵다는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왕이 주인인 시대에는 왕의 입장에서,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제국에 편리하도록 판결문이 작성되고, 그러한 판결은 나라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재판을 받는 분들은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니까 존댓말로 판결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나라 공문서는, 행정부의 과태료 통지서에서 검찰의 불기소 처분서까지 모두 존댓말을 사용합니다. 법원도 판결문을 제외한 공문서는 존댓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판결문만큼은 여전히 반말을 사용합니다. 판결은 국민이 받아보는 마지막 남은 반말 형태의 공문서로 보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제까지 판결문의 한글 전용, 간이화를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오래된, 견고한 흐름을 깬 이른바 ‘존댓말 판결문’이 나왔습니다. 2020년 4월 23일 대전고등법원 민사 판결문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문, 판결 이유 등이 모두 반말이었는데, 이 판결문은 모든 문장이 존댓말입니다. 또 다른 가처분 소송 결정문이나, 형사 사건 결정문 역시 모든 문장이 존댓말로 돼 있습니다.

‘존댓말 판결문’을 작성한 당시 이인석 판사는 “나라의 주인인 국민께 판결도 존댓말로 해드려야 하지 않냐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고 겸손하게 설명했지만, 고압적이고 권위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법원이 ‘존댓말 판결문’을 쓰는 것은 수요자인 국민들에게 좀 더 친숙하고 가까이 다가가는 올바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판결문은 한자에서 한글로, 복잡한 판결에서 쉬운 판결로, 국민이 주인이 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존댓말 판결이 쓰인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가기관도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고, 다양한 형태로 존댓말을 시도하는 판사가 늘고 있습니다. 이미 법정에서 대부분 판사가 존댓말을 사용하여 구두로 재판을 진행하고, 판결도 존댓말로 선고하는 대법관, 법관들이 상당수 있습니다.

신문 독자나 민·형사 당사자 모두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입니다. ‘존댓말 판결문’은 분쟁의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들이 존중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에 판결에 승복할 수 있습니다. 판결문을 존댓말로 쓴다고 권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수요자 중심으로 쓴 고압적이지 않은 판결문은 오히려 법원의 권위를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신문이나 법원이 가르치는 식으로 사설이나 판결문을 쓴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신문이 스스로 권력이라고 자칭하며 반말을 고집하는 것은 시대적 착각입니다. 절대로 신문에선 존댓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는 구태 속 조언은 무시하기로 했습니다. 선배들이 한글 전용 가로쓰기를 선도했던 그 당시 저항과 정신을 다시 떠올립니다. 감히 우리 인터넷 신문의 독자들에게 가르치려 들지 않겠다는 마음입니다. 제가 존댓말로 칼럼을 쓰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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