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에게나 사는 게 너무 버거운 순간이 있습니다.
불안과 스트레스가 시시때때로 자신을 짓누르고, 극심한 탈진이 오기도 합니다. 이때 현대인들이 가장 손쉽게 의존하는 건 흡연, 음주, 폭식. 이는 ‘무용한 발버둥’이라고 단호하게 말고 싶습니다. 이들은 뇌의 화학적 상태를 바꿔 단기적으로 기분을 나아지게 할 뿐, 결코 지속적이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몸과 마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칩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뇌과학자와 구글 디자인 부총괄이 ‘신경 미학(Neuroesthetics)’이라는 새로운 학문적 관점을 통해, 예술이 우리의 신체·정신적 건강에 근본적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해 냅니다. 과학적인 증명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 일상을 통해 예술이 무용하지 않다는 걸 직간접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음악 한 곡이 주는 위로와 그림 한 점에서 오는 평안은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단지 느낌에만 머무르게 하는 게 아니라 뇌과학적 수준에서 이해하고 설명해 내는 게 ‘신경 미학’의 역할입니다.
물론 그동안 예술을 단순한 ‘도피처’나 ‘사치’로 여겼던 사람들에겐 훌륭한 반박 자료를 제공합니다.
미술관은 ‘호기심’을 경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입니다. 이 호기심은 ‘잘 사는 삶’의 주춧돌이 됩니다.
30여 년 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교육부 총괄을 맡았던 필립 예나원(Philip Yenawine)은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관람객의 80%가 그림을 보며 한 가지 압도적 감정을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호기심’입니다.
“인간은 탐구 끝에 답을 얻어 호기심을 충족하면 뇌의 보상 화학물질인 도파민이 몸에 퍼져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호기심은 공감력을 키우고 관계를 강화합니다.
우리는 미술관에서 호기심의 사촌 격인 ‘경이로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경이로움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는 의외성에 놀랐을 때와 아름다움에서 촉발된다고 말합니다. 미술관이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하는 최적의 장소임은 분명합니다.
물론 미술관뿐 아닙니다. 엑서터대학교에서 이뤄진 연구에 따르면 시를 읽자 휴식 상태와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이 기능적 자기공명촬영(fMRI) 영상으로 확인됐습니다.
시(詩)를 읽다 보면 신경과학자들이 ‘오한(惡寒, chil) 직전’이라고 부르는 상태가 오는데, 차분한 감정이 서서히 최고조를 향해 가는 느낌을 말합니다. 그래서 안정되지 않거나 잠이 오지 않을 때 시를 몇 편 읽으면 이완되고 새로운 관점이나 통찰을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또 다른 막스 플랑크 연구팀(Max-Planck-Gesellschaft, MPG)은 ‘왜 슬픔에 빠졌을 때 시를 찾을까’를 연구하면서 시가 ‘강렬한 정서적 개입을 유도해 주의 집중 상태를 유지하고, 기억 저장성을 높이는 데 유독 효과적’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최근 국내 출판 시장 불황에도 10ㆍ20세대를 중심으로 시집 판매량이 상승세를 보이는 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느꼈던 이런 이유 때문일지 모릅니다.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제출한 글을 철저히 비공개로 할 테니 한쪽 학생들은 원하는 가벼운 주제로 글쓰기를, 다른 쪽은 트라우마적 경험을 소재로 글을 써보게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표현해 글을 쓴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학내 보건소를 찾은 빈도가 월등하게 낮았습니다.
연구진은 “감정과 느낌에 언어를 부여하는 행위가 살면서 겪는 힘겨운 사건들에 맥락을 입히고 그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신경생물학적 수준에서 돕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트라우마의 경직된 경계들을 조금씩 밀어내는 부드러운 수단”으로서 예술이 작용했습니다.
“예술과 아름다움이 건강에 생리학적 이득을 즉각 제공한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가 워낙 많아 신경 미학의 발달 이후 의료계 종사자 등을 중심으로 예술을 ‘처방’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에는 노래 교실을, 불안에는 미술관 방문과 콘서트 관람을, 탈진에는 자연 속 산책과 같은 식입니다.
다만 아직 학문적 깊이가 얕은 신생 학문이라 그런지, 그 연구 결과들이 질서정연하게 정돈된 느낌은 아닙니다. 고만고만한 사례가 중구난방식으로 펼쳐져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예술이 특히 강한 힘을 발휘하는 건 만성적이고 트라우마적인 스트레스 치료 분야입니다.
쉬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고, 늘 불안과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온 바로 그대여, 미술관에 한번 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