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장면:
어느 마을버스에 30명의 사람이 함께 앉아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리는 승객은 없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사람이 올라탔습니다. 그럼, 버스에 탄 사람들의 평균 몸무게는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5%? 아니면 10%. 대략 이런 범위 이내일 거로 추측할 것입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남성의 평균 몸무게는 74.33kg이고, 여성의 평균 몸무게는 58.65kg입니다. (자료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으나, 이 예시는 평균값 산출을 위한 것이니 세세한 기준이나 무게는 생략하겠습니다) 공식기록은 없지만 보도자료를 참고하면 268kg 나가는 분이 바로 그분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기존에 탄 30명 중 남녀 성비가 같다고 가정하면 가장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분이 타기 전 버스에 탄 승객 30명의 평균 몸무게는 66.49kg입니다. 268kg으로 가장 몸무게가 많은 분이 타게 되면 31명 승객의 평균 몸무게는 72.99kg으로 평균 9.8% 상승하게 됩니다.
이런 평균은 그리 심각한 요소가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두 번째 장면:
첫 번째 장면에서 등장했던 같은 마을버스입니다. 다음 정거장에서 몸무게가 가장 많은 승객이 내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자인 이모 회장님이 올라탔습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의 평균 자산액은 얼마나 달라질까요?
2024년 12월 한국은행ㆍ금융감독원ㆍ통계청의 ‘2024년 가계 금융 복지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3월 기준 2024년 가구당 평균 자산은 5억 4천만 원으로 조사되었습니다. 반면 가계부채는 9천1백만 원으로, 순자산은 약 4억 5천만 원이었습니다. 통계청 인구총조사에 따르면 2024년 전국 가구당 평균 인원은 2.2명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 이모 회장님이 버스에 타기 전 30명의 1인당 평균 자산은 2억 4천5백만 원입니다. 이모 회장님의 재산은 1조 3천억 원. 이모 회장님이 버스에 탄 이후의 마을버스승객 31명의 1인당 평균 자산은 4백21억 7천 만원입니다. 그려면 승객의 평균 자산이 약 17,081% 증가한 것입니다.
다른 측정치를 가진 사람들보다 현저히 차이를 보이는 단 한 명의 예외자로 인해서 버스 안의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으며, 이런 경우 ‘평균’이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세 번째 장면:
베트남 전쟁 중 미 육군 보병 3분대 8명이 작전 중 후퇴하던 중 다리가 없는 강을 만났습니다. 빨리 그 강을 건너야 보급을 받고 적의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부교를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3분대 무전병이 무전기로 본부중대 관측장교를 찾았습니다. “장교님, 우리가 건너려고 하는 강의 평균 수심이 얼마인지 관측한 결과를 알려 주세요. 분대장님이 지시하셨습니다.” 관측장교는 즉시 통계자료를 꺼내 알려주었습니다. “평균 수심은 1m” 분대장은 무전병의 전언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본부 중대장이 3분대 무전병에게 연락을 취하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늦은 밤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리였고, 적의 공격도 없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무전병과의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급히 수색대를 조직해서 3분대의 행방을 찾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수색대는 2시간이 지난 후 무전기로 본부 중대장에게 보고했습니다. “충성! 3분대원 8명은 모두 익사한 채 발견되었습니다.”
침울한 본부 중대장 옆에서 소식을 들은 관측장교는 털썩 주저않았습니다. ‘그 강의 평균 수심은 1m였지만, 가장 깊은 곳은 5m였는데!’ 관측장교는 가장 깊은 수심이 5m인 것을 알려주지 않았고, 잔뜩 무장한 3분대원 8명은 5m 깊은 부분을 전혀 알지 못하고 강에 뛰어든 것입니다. 강에는 수심이 불과 몇 cm인 곳도, 5m인 곳도 있었습니다. 강 깊이가 평균 1m라고 인식한 것이 큰 위험을 불러왔습니다.
평균은 그 배후에 있는 개별값의 특성을 은폐하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장면:
20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유명한 대입 컨설팅 회사가 한 신문사에서 자료 요청을 받았습니다. “미국 대학교 중 졸업생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학과는 어디인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컨설팅 회사의 회신은 엉뚱하리만치 예상치 않은 ‘지리학과’라는 답이 전달되었습니다. 물론 수치로도 분명하게 기록이 되었고, 컨설팅 회사뿐만아니라 신문사에서도 검산을 철저히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 대학 중 졸업생 평균 연봉이 가장 높은 학과는 지리학과입니다.’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습니다. 그해 갑자기 ‘지리학과’ 입시 경쟁이 치열해졌습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컨설팅 회사에서도 놀라자빠질 정도의 쏠림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컨설팅회사 신입직원이 분석 데이터를 하나하나 꼽아보다가 핵심 정보를 찾아냈습니다.
지리학과 졸업생 중 전설적인 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이클 조던의 수입은 총 4조 3천억 원. 그는 특기 장학생으로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 입학했고, 지리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그는 프로 농구 선수 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도시로 이동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 각 도시의 문화와 특징을 이해하는 데 지리학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무튼 마이클 조던이 ‘지리학과’를 전국 졸업생 최고 연봉의 학과로 등극을 시켰던 것입니다.
평균이 가진 속성으로 인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국민 평균 소득은 얼마일까? 아파트의 평균 가격은 얼마일까? 아파트별 평균 관리비는 얼마일까? 중국 장가계 여행 평균 경비는 얼마일까? 국내 프랜차이즈가 평균 존속기간은 몇 년일까? 올해 정년퇴직자의 평균 퇴직금은 얼마일까? 특정 암 수술 후 완치 기간은 평균 몇 년일까? 이번 달 지급되는 국민연금의 평균 지급액은 얼마일까? 한국 노인들의 평균 독서량은 몇 권일까? 한국인이 평균 건강수명은 몇 세일까?
이 모든 것들은 계산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나온 결과가 어떤 중요한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문에 평균의 배후에 숨겨진 통계의 분포를 규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 꼭 해야 할 일입니다.
미국은 2014년 기준 소득 상위 계층 40세 남자의 기대수명이 87세였습니다. 반면 하위 계층은 이보다 10년이 짧은 77세입니다. 여성도 상위 계층 89세, 하위 계층 84세로 5년쯤 차이 납니다. 복지 천국이자 평등한 사회로 불리는 노르웨이도 비슷합니다. 남자는 상위 계층 기대수명이 85세, 하위 계층의 기대 수명이 77세로 8년 차이, 여자는 상위 계층이 88세, 하위 계층이 81세로 7년 차이가 있습니다. 두 나라 모두 격차는 점점 커지는 추세입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강영호 교수팀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소득 상위 20% 계층과 하위 20% 계층의 기대수명 격차는 상당합니다. 기대수명이 남자는 2017년 기준 상위 계층이 83세, 하위 계층이 75세로 8년 차이, 여자는 상위 계층이 88세로, 하위 계층이 83세로 5년 차이입니다.
이렇듯 사회 경제학적 지위와 기대 수명은 맞물려 있습니다. 말기암 환자, 만성질환자, 알콜중독자, 혹은 병원에 가도 싶어도 갈 수 없는 환자는 평균적으로 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또 우리 사회의 약자인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사람, 갑자기 직장을 잃은 사람, 결혼 이주 여성, 외국인 노동자, 북한 이탈 주민 등은 더 많이 아픕니다.
평균은 평균값 간의 비교를 하기 위해서만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평균이 만들어 놓은 큰 함정에 빠져듭니다. 바로 나와 평균값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내가 평균보다 높으면 기분이 좋고, 내가 평균보다 낮으면 기분이 나쁩니다. 그러면 평균을 중심으로 기분 좋은 사람과 기분 나쁜 사람의 수가 같을까요?
본 칼럼 중 두 번째 장면: 버스에 탄 승객들 30명은 1인당 평균 자산 2억 4천5백만 원이라는 사실에 대해 크게 동요하지 않았지만, 이모 회장님이 타고 31명이 되면서 1인당 평균 자산이 4백21억 원으로 늘어난 사실에 놀랍니다. 그리고 본인의 실제 자산과 비교합니다. 30명은 평균 자산보다 1/171로 작아져서 슬프고, 나머지 1명만이 평균보다 훨씬 많아 으쓱할 것입니다. 슬픔 30과 기쁨 1로 감정은 갈라집니다.
비교는 열등감(inferiority complex)과 우월감(superiority complex)을 모두 유발합니다. 열등감은 자신을 위축시키고, 우월감은 타인을 경시하는 저급한 자로 만듭니다. 비교가 만든 두 열매는 모두 불행의 방향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비교를 통해 만들어진 커다란 열등감은 질투를 유발합니다.
‘철학의 왕자’로 불리는 네델란드 철학자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년 11월 24일 ~ 1675년 2월 21일)는 ‘질투는 타인의 행복을 슬퍼하고, 타인의 불행을 기뻐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질투는 자존심, 경쟁, 불행, 증오 등과 밀접하게 연결된 감정입니다. 질투는 자신과 타인을 모두 파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멸망을 낳게 됩니다.
평균은 비교를 낳고 비교는 질투를 낳고 질투는 멸망을 낳습니다. 전체값을 더하고 대상으로 나눈 값이어서 오류가 없어보지만, 개별값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평균은 계산된 함정입니다. 평균은 계산된 함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