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平等(びょうどう, 비요도우; 평등; Japanese-Style Fairness)
‘平等(びょうどう, 비요도우; 평등; Japanese-Style Fairness)’, 즉 ‘평등’이라는 개념은 본래 서구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모든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기독교 신학적 믿음에서 발전한 사상입니다. 물론 역사적으로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평등하게 대우받은 적은 없었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는 수 세기 동안 법률을 제정해 이를 제도적으로 실현하려고 시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는 이러한 역사적 전통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일본의 두 주요 종교인 불교와 유교는 평등의 원리를 인정하거나 가르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반대의 전제를 바탕으로 발전했습니다. 일본 사회의 기본 구조는 수 세기에 걸쳐 불평등을 기반으로 하여, 사람들을 계급과 신분으로 세밀하게 구분하고, 제도적·의례적 불평등 속에서 개인의 행동을 규제해 왔습니다.
1945년 9월부터 1952년 5월까지 이어진 연합군의 일본 점령 기간 동안, 미국은 ‘평등’의 개념을 일본에 어느 정도 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가부장적 가족 제도가 법으로 금지되어 여성과 자녀에게 이전에 없던 권리가 부여되었고, 정치 개혁을 통해 국민은 더 많은 참정권을 얻었으며, 노동자들은 단체 교섭권을 보장받았습니다. 그러나 법령만으로 일본 사회의 문화를 단기간에 바꾸기는 어려웠고, 불평등은 사회 전반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었습니다.
1960년대에 이르러 전후 세대의 젊은 일본인들은 친구들 간의 관계에서 평등적 성향을 보여주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흐름은 점점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평등 의식은 개인적 영역에 국한되었을 뿐, 학교, 경제, 정치 조직에서는 여전히 불평등이 지배적인 원칙으로 작용했습니다.
즉, 젊은 세대가 사적으로는 평등을 지지했지만, 교육을 받고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기존의 불평등 구조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원칙상’일 뿐입니다. 실제 삶은 여전히 ‘不平等(ふびょうどう, 푸비요도우)’ 즉, 불평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성별, 나이, 학력, 출신 학교, 가문 배경 등이 개인의 지위를 결정하며, 이는 집단과 조직 내에서 개인의 행동을 규제하는 기준이 됩니다. 따라서 외국인이 일본의 기업, 관청 등과 교류할 때에는 일본 사회에서 ‘평등’이 부족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개인이 속한 위계 질서가 그 사람의 태도와 행동을 크게 좌우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특히 외국인과 관계될 때 중요한 점은, 일본인의 행동은 그가 속한 조직 내 위계적 지위와 그 지위에 허용된 역할에 의해 통제된다는 점입니다. 고위 경영자조차도 독자적으로 행동하기 어려우며, 모든 일본인은 자신이 가진 권한과 특권, 그리고 조직 내 ‘영역’을 매우 민감하게 인식하고 이를 지키려 합니다. 만약 이러한 위계 질서를 무시하고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을 대할 경우,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일본 기업의 관리자는 외부 제안을 자신에게 이익이 없다고 판단하면 공유하지 않기도 하고, 반대로 그것이 유망하다고 생각할 경우, 최대한 공을 자신이 차지하기 위해 일부러 숨겨두기도 합니다.
외국인들은 일본 사회의 위계적 제약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며, 때로는 일본인에게 조직 내 위상을 해칠 수 있는 대응을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일본 조직 내 ‘窓口(まどぐち, 마도구치; 창구 담당자)’를 통해 의사소통을 하고, 그의 상사와 부하를 함께 대화에 포함시켜 적절한 사람들이 모두 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접근은 반드시 창구 담당자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야 하며, 외국인이 외교적으로 신중히 조율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습니다.
계약 사항이 성실히 이행되지 않아 따지려 들 때, ‘窓口(まどぐち, 마도구치; 창구 담당자)’의 높다란 장벽을 넘어서 상대편 임원 또는 최고경영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고, 이에 대한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면서 일본인의 속마음을 지금처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던 그 때의 기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