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湯船(ゆぶね, 유부네; 욕조; Japanese bathtub)
일본 문화에서 가장 독특한 측면을 하나 꼽으라면 전통적인 일본식 목욕 방식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일본인은 매일 목욕을 한 최초의 민족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삶의 의식적인 일부로 만든 가장 이른 집단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의 경우 매일 목욕을 하게 된 동기는 종교적이었습니다. 일본의 토착 종교인 신토(神道, しんとう)의 주요 교리 중 하나는 육체적·정신적 청결을 강조했습니다. 매일 목욕을 하는 것은 단순히 육체적 청결을 보장하는 것뿐 아니라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씻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 일본에서 신토는 선택이 아닌 삶의 방식이었기 때문에 모든 일본인은 가능하다면 매일 목욕하도록 교육받았습니다.
유년기부터 가족과 이웃들은 함께 목욕을 했습니다. 이는 대중 목욕탕에서든, 혹은 개인이 가진 욕조를 목욕탕이 없는 이웃과 나누어 쓰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인이 목욕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큰 요인은 나라 곳곳에 분출하는 수천 개의 온천이었습니다. 일본 열도의 화산 지형 덕분에 땅속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곳이 매우 많았던 것입니다.
전통적인 일본식 목욕법은 유럽에서 발전한 관습과 크게 달랐습니다. 1500년대 중반 처음 유럽인이 일본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일본인은 매일 목욕을 했지만, 유럽인들은 잦은 목욕이 건강에 해롭다고 믿으며 목욕을 거의 피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목욕하는 사람조차 정신이 이상하다고 여겨질 정도였습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일본에서 혼욕(남녀가 함께 목욕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인에게는 삶의 모든 일에는 시간과 장소가 있으며, 목욕은 성적인 장소도,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청교도적인 유럽인들은 이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가 개종자들에게 혼욕을 금하고,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목욕하지 못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서양인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점은, 일본인들이 탕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몸을 깨끗이 씻고 난 후에야 들어간다는 점이었습니다. 반면 서양인들이 탕 안에서 비누질을 하고 몸을 씻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들은 경악했습니다. 깨끗한 물에 들어가 몸을 담그는 것을 더럽히는 일이라 여겼던 것입니다.
일본어로 욕조를 “유부네(湯船, ゆぶね)”라고 합니다. ‘유(湯)’는 뜨거운 물을 뜻하고, ‘부네(船)’는 배를 뜻합니다. 합쳐서 “뜨거운 물의 배”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이 욕조를 고요한 바다 위의 배로 상상하여, 그 안에서 마음과 근심이 흘러가도록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일본 가정에서도 서양식 욕실이 흔해졌지만, 일본인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유부네 문화를 지켜오고 있습니다. 가정의 욕실은 타일 바닥과 배수구로 설계되어 있어 욕조에 들어가기 전 반드시 몸을 닦고, 깨끗한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유부네 문화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와 질서의식을 잘 보여줍니다. 일본인에게 목욕은 단순한 신체적 행위가 아니라 정서적·영적 경험입니다. 목욕은 사색, 재생, 감각적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며, 일본 공장이나 상품 진열에서 볼 수 있는 청결과 질서, 의례에 대한 세심함을 반영합니다.
일본인 정신세계에서 뜨거운 물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때를 씻어낼 뿐 아니라 “죄”와 심리적 짐을 씻어내고 다시 순수한 상태로 되돌려주는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저는 일본 전 총리이자 제2차 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기소된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とうじょう ひでき)의 마지막 밤을 떠올립니다. 그는 1948년 12월 23일 새벽 교수형에 처해지기 전,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게 해 달라고 요청하며 “우리 일본인은 깨끗이 죽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을 일으켜 수 많은 인명을 앝아간 수괴가 ‘자신은 깨끗이 죽고 싶다’는 아이러니. 일본인의 속마음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