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삶을 기록하는 또 하나의 방법
우리는 종종 ‘책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가’보다는 ‘무엇을 읽었는가’, 그리고 ‘그 책이 나에게 무엇을 남겼는가’를 더 중시합니다. 그러나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서 92세로 생을 마감한 댄 펠저(Dan Pelzer) 씨의 이야기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그는 1962년부터 시력이 나빠져 더 이상 책장을 넘길 수 없었던 2023년까지 총 3,599권을 읽었고, 이를 모두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의 기록은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반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한 개인이 어떤 생각과 취향, 변화를 거쳐왔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인생 연대기’입니다. 책 제목과 읽은 날짜, 때로는 그에 대한 간단한 인상까지 남긴 이 목록은, 가족과 친구뿐 아니라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독서가 남긴 대화와 기억
펠저 씨의 딸 마시 펠저 씨는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이 목록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지만, 100쪽이 넘는 분량을 인쇄하는 것은 어려웠습니다. 대신 웹사이트(danread.com)를 만들어 QR 코드로 접속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발상은 단순한 기록 보존을 넘어,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이 고인을 떠올리며 책 이야기를 나누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시 씨는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 많은 부분이 책에 관한 것이었어요. 종교, 회고록, 소설까지, 아버지는 이야기를 사랑하셨죠.”라고 회상했습니다. 그녀의 말 속에는 단순한 독서가 아닌 ‘함께 읽고 나누는 경험’의 소중함이 담겨 있습니다.
시대를 넘나드는 독서 습관
펠저 씨의 독서 목록에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 같은 고전도, 빌 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방법》 같은 현대서도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워터십 다운》을 읽고 토끼 캐릭터에 애정을 쏟았고, 말년에는 환경 문제와 채식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는 독서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시대의 변화와 함께 사고방식과 생활 습관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연간 80권의 꾸준함
그는 한때 1년에 약 80권을 읽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속도 경쟁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시간을 내어 읽어온 습관에서 비롯된 결과입니다. 그의 아들 존 펠저 씨는 “아버지는 매일 산책을 하고 나면 남은 시간을 책 읽는 데 썼다”고 전했습니다. 시력이 약해지고, 병원과 요양원을 오가던 말년에도 그는 책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기억과 유산으로서의 기록
펠저 씨의 삶은 독서와 더불어 기록하는 습관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3,599권의 목록은 개인적인 추억이자, 한 시대의 독서문화 기록입니다. 콜럼버스 메트로폴리탄 도서관은 그의 목록을 디지털화하여 다른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도록 하고, 도서관 한켠에 그가 읽었던 책을 전시할 계획입니다.
이는 한 사람의 기록이 어떻게 공동체의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는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우리 모두는 인생 후반부에 들어서며 ‘무엇을 남길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합니다. 기록은 그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시니어에게 주는 교훈
펠저 씨의 사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줍니다.
작은 습관이 큰 유산이 된다
하루 10분이라도 책을 읽고 기록하는 습관이 쌓이면, 수십 년 뒤 누군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유산이 됩니다.
기록은 기억을 살린다
나 자신도 잊었던 순간을 기록이 다시 깨워줍니다. 펠저 씨도 목록 속 책을 보고 “이건 내가 읽었네”라고 놀란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눌 때 가치가 커진다
혼자 간직하는 기록도 의미 있지만, 이를 가족·친구·이웃과 공유할 때 훨씬 큰 울림이 생깁니다.
변화에 열린 마음을 유지하라
그는 고전뿐 아니라 최신의 책도 주저 없이 읽었습니다. 이는 나이를 불문하고 지적 호기심을 유지하는 태도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마무리하며
펠저 씨의 3,599권 독서 기록은 단순히 ‘많이 읽은 사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인생 여정이자, 시대와 함께 성장하고 변화해온 생각의 발자취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독서는 여전히 강력한 삶의 동반자입니다. 눈으로 읽는 즐거움뿐 아니라,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세상과 연결해주는 다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기록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또 다른 영감을 줄 수 있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