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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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니어 세대를 위한 새로운 시각

경제학자들은 ‘보편적 기본소득(UBI)’이 수혜자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전 세계 프로그램들은 그 반대가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고 노벨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V. 바네르지(Abhijit Banerjee, 2019년 노벨 경제학상)와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2019년 노벨경제학상, 아비지트 바네르지의 아내)가 전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과 자동화, 그리고 급격히 변하는 노동 시장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문제로 다가옵니다. “내가 나이 들어서도 일할 수 있을까?”, “은퇴 후에도 소득을 유지할 방법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점점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최근 여러 나라에서 실험되고 있는 ‘보편적 기본소득(UBI, Universal Basic Income)’ 논의는 이 질문과 깊이 맞닿아 있습니다.

많은 경제학자와 정책 입안자들은 오랫동안 보장 소득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노동 의지를 약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해 왔습니다. “공짜로 돈을 준다면 누가 일을 하려 하겠는가?”라는 의문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여러 나라의 연구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보장 소득은 사람들을 더 게으르게 만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열심히, 더 생산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오래된 오해

전통적 경제학 모델은 사람들이 일정한 소득을 보장받으면 노동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해 왔습니다. 즉, 필요한 만큼의 돈이 이미 주어지니 굳이 힘들게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가정입니다. 시니어 세대 역시 이러한 관점을 오랫동안 들어왔습니다. “연금을 많이 주면 사람들이 더 이상 일하려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금 이전 프로그램,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시행된 보편적 소득 실험은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돈을 받은 사람들은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고, 새로운 기회를 탐색하며, 더 나은 기술을 익히는 데 시간을 사용했습니다. 단순히 여가를 즐기는 대신 스스로를 발전시키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보장 소득이 열어준 새로운 기회

가장 중요한 변화는 ‘선택의 여유’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기본적인 생계가 보장되면 사람들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농민이 현금을 지원받으면 값싼 곡물 대신 고부가가치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도시의 소규모 자영업자라면 장비를 구입하거나 품질을 개선할 수 있고, 여성이나 청년들은 새로운 일거리를 시도할 수 있습니다.

시니어 세대에게도 이는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집니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면, 단순히 “어떻게든 버틴다”는 수준에서 벗어나 새로운 배움과 도전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퇴 후에도 소득이 불안정하지 않다면,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노동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다

노년기에 접어든 많은 분들은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계십니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부여하는 활동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은퇴 후 급격히 무기력해지거나 사회적 관계가 끊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일의 부재”입니다.

보장 소득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사람들의 ‘게으름’을 조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의미 있는 일을 찾도록 자극했습니다. 가방을 만드는 여성들이 더 많은 프로젝트를 맡고, 실수를 줄이며, 더 많은 수입을 올렸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즉, 기본소득은 노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가치 있는 노동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 기반이 됩니다.

시니어에게 주는 교훈

우리나라 역시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노인 일자리 사업 등은 모두 고령층의 소득 안정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시니어들이 “생활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힘든 일을 택하거나, 안정적이지 못한 비공식 일자리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만약 일정 수준의 보장 소득이 제공된다면, 시니어 세대는 단순히 ‘버티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생 쌓아온 경험과 지혜를 지역 사회에 환원하거나, 손자·손녀 돌봄, 자원봉사, 혹은 창업과 같은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소득 보장이 아니라 ‘삶의 질’ 문제와 직결됩니다.

우리의 미래와 정책 방향

앞으로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더욱 확산되면, 기존의 일자리는 줄어들고 새로운 형태의 일이 등장할 것입니다. 젊은 세대뿐 아니라 시니어 세대도 이런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보장 소득은 그 전환기를 안정적으로 건너가는 데 중요한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재원 마련과 제도 설계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장 소득이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든다’는 낡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실제로는 사람들이 더 열심히, 더 창의적으로 살아가도록 돕는 장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