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자리를 비우고 대신 은행 계좌에 로그인하려다 막막함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누군가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공과금 고지서, 복잡한 투자 내역, 알 수 없는 비밀번호 목록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순간 말입니다.
앨리스 스톤 나히모브스키의 이야기는 결코 특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곁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평생 가계를 책임져온 부부라면 한쪽의 부재는 단순한 ‘이별’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그것은 남은 이에게 경제적 문맹 상태에서의 생존 시험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함께 살았지만, ‘함께 관리하지 못한 돈’
앨리스는 러시아 문학 교수로 평생 학문에 몰두해왔지만, 가계의 숫자와 재정은 모두 남편 사샤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세심했고, 꼼꼼했습니다. 그러나 그 꼼꼼함은 배우자에게 ‘이해 가능한 언어’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에야 처음으로 여러 스프레드시트를 열어보았습니다. 투자 내역, 주식 거래 기록, 연금 자료, 세금 명세서 등 남편의 손끝에서 정리된 모든 파일들이 이제 자신에게 넘어왔습니다. 그러나 그 파일은 단순한 엑셀 시트가 아니라, ‘해독되지 않은 언어의 지도’였습니다.
평균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약 6~7년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하지만 재정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남성 중심적 구조가 많습니다. 실제로 미국 금융서비스재단의 조사에서도 40%의 남성이 자신이 사망한 후 아내가 재정적으로 취약해질 것이라 예상한다고 답했습니다.
이 통계는 슬프게도 단지 미국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가계의 금융 결정을 한쪽 배우자만 전담하는 사례는 여전히 높습니다.
“그가 있을 땐 몰랐어요.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
앨리스는 남편의 죽음 이후 “때로는 너무 답답해서 소리를 질렀다”고 고백했습니다.
남편이 평생 관리하던 금융 구조 속에서, 그녀는 갑자기 낯선 수치와 서류의 홍수에 던져졌습니다.
퇴직연금, 채권, 주식, 세금공제, 계좌 비밀번호—이 모든 것은 그가 사라진 순간, 가족의 생명줄이자 벽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재정 상담사를 찾아갔습니다. 로건 리드라는 전문가가 남편의 여러 계좌를 정리해주었지만, 그것은 단지 기술적인 도움일 뿐이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돈의 구조’가 아니라 ‘돈의 소통 부재’였습니다.
리드는 이렇게 조언했습니다.
“남편이 재정을 맡아온 세대의 여성들은 배우자의 죽음 이후 비로소 복잡한 금융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앨리스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나누었지만, 책임은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숫자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배워야 합니다.”
앨리스는 그가 남긴 스프레드시트를 다시 열어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하지만 그를 잃기 전에 배웠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녀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남편이 생전에 남긴 비디오 메시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영상 속 사샤는 차분히 각종 계좌의 구조와 투자 흐름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앨리스는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슬픔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금융 강의’였던 셈입니다.
남겨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유산은 ‘정보 공유’
사람들은 흔히 ‘재산 상속’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정보 상속’은 간과합니다.
누가 어디에 얼마를 넣었는지, 어떤 보험이 있으며, 어느 계좌로 공과금이 자동이체 되는지—이런 일상적인 정보조차 공유되지 않은 채 부부의 한쪽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은 단순히 슬픔만이 아니라 ‘혼란’을 상속받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고령 부부가 늘어가며 이 같은 문제는 점차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공무원연금, 국민연금, 주택연금 등 다양한 재정제도가 존재하지만, 실제 운용 방식이나 수령 절차를 배우자가 모르면 지원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사랑의 증거’가 단순히 유언장에 담긴 금액이 아니라, 배우자가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재정 설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지금부터 준비할 수 있는 다섯 가지
- ‘공유 가계부’를 만들자.
엑셀 파일 한 장이면 충분합니다. 수입, 지출, 자동이체, 보험료, 예금 계좌 등을 명시하고, 배우자와 함께 업데이트하세요.
- ‘디지털 자산 목록’을 기록하자.
온라인 계좌, 포털 로그인, 증권사, 신용카드, 공인인증 등 디지털 접근 정보를 정리해두면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있습니다.
- ‘가족 재정회의’를 정례화하자.
월 1회, 짧게라도 부부 또는 자녀와 함께 재정 상황을 점검하면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 ‘신뢰할 만한 제3자’를 두자.
재정 상담가나 변호사 등 객관적인 사람이 재정 기록을 관리하도록 위임할 수도 있습니다.
- ‘금융 문해력’을 늦기 전에 배우자.
숫자는 두렵지만, 배우지 않으면 두려움이 현실이 됩니다. 지역 평생교육원, 50+센터, 노후설계 아카데미 등에서 무료 강좌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모르는 것이다.”
사샤는 죽음의 순간까지 가족의 경제를 책임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유산은 ‘돈’이 아니라 ‘기억’이었습니다.
앨리스는 이제 그 기억 위에서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숫자를 싫어했지만, 이제는 배워야 해요. 이건 생존의 문제니까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재정을 공유하는 일은, 사랑을 지키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