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 불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근래 들어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자리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쉴 새 없이 흘러나옵니다. 언론은 하루가 멀다 하고 “AI가 전문직을 위협한다”, “백오피스 업무(지원 업무)가 사라진다”는 제목을 내걸고, 일부 기업들은 실제로 자동화 도입 계획을 발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다른 진실도 알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한 번도 멈춘 적이 없었지만, 그중 실현된 예언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적었다는 사실입니다.
1980~90년대를 살았던 많은 분들께서는 당시 대중문화가 그려낸 미래를 기억하고 계실 것입니다. 어둡고 위협적이며, 범죄가 난무하고, 사회 질서가 완전히 붕괴된 모습으로 묘사된 ‘디스토피아’ 말입니다. 대표적으로 영화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는 2019년쯤 인간과 기계가 구분되지 않는 복제인간이 범죄와 폭력을 일으키는 시대를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2019년은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런닝맨(The Running Man), 2025년 개봉』, 『커트 러셀의 코브라 22시(Escape from New York), 1981년 개봉』,『 소일렌트 그린(Soylent Green), 1973년 개봉』, 『 시계태엽 오렌지(A Clockwork Orange), 1971년 개봉』등 많은 작품들이 2000년대 초반의 세계가 폭력과 통제, 식량 부족, 국가의 붕괴로 가득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우리는 과거의 예측에 비하면 훨씬 온전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완벽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쟁, 기후 위기, 경제 불평등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는 명백히 존재합니다. 다만 ‘예상했던 만큼 무너진 미래’는 오지 않았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기술 혁신이 가져오는 변화 속에서도 사회는 생각보다 더 단단했고, 인간은 훨씬 더 유연했습니다.
AI 시대의 불안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늘날의 기술 불안은 단순히 새로운 기계나 소프트웨어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변화 속도에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는 이미 인생의 여러 구간에서 거대한 변화를 겪어 오셨습니다. 산업화, 자동화, PC·인터넷 보급, 스마트폰 혁명 등을 모두 직접 체험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자리의 성격은 바뀌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에 적응했고 사회 역시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왔습니다.
예컨대 1990년대에 “인터넷 때문에 상점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오히려 여러 형태의 소비와 서비스가 공존하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은행 업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터넷뱅킹이 등장했을 때 실물 창구가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여전히 창구 서비스는 필수 영역으로 존재합니다. 특정 기능은 축소되었지만, 다른 역할은 더 강화되었기 때문입니다.
AI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일부 반복적 업무는 자동화될 수 있지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감정·경험·판단 기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고령층이 가진 인생 경험, 조직 운영 노하우, 대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기계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기술은 종말을 가져오지 않는다… 늘 그랬듯 적응이 핵심이다
대중문화가 그려온 디스토피아가 현실이 되지 않았던 이유는 인간 사회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강력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 하나가 등장했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모든 제도가 무너지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사회는 새로운 기술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규범과 법, 문화, 노동 시스템을 조정해 왔습니다.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도 “모두 중독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우리는 점차 사용 규칙과 에티켓을 만들어 왔습니다. 인터넷이 처음 보급됐을 때도 범죄와 혼란이 걱정됐지만, 사회는 법제를 정비하고 교육을 강화했고, 결과적으로 안정된 온라인 환경을 구축했습니다.
AI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혼란과 불안이 생길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기술이 인간의 가치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가치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큽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한 관점: ‘위협’보다 ‘기회’를 보자
오늘의 시니어 세대는 기술 변화의 피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경험이 결합된 새로운 기회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ㆍ경험 기반 조언 직업 증가
– 코칭, 컨설팅, 멘토링, 교육 등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ㆍ고령자의 강점이 더 빛나는 시대
– 의사소통, 판단, 윤리, 리더십, 협상처럼 ‘사람 중심 능력’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ㆍ 기술은 어려울수록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
스마트폰이 어려웠던 시절, 디지털 교육과 IT 도우미가 등장했던 것처럼, AI 시대에는 ‘AI 활용 도우미’, ‘AI 컨설턴트’, ‘디지털 동반자 서비스’ 같은 새로운 역할이 생겨날 것입니다.
ㆍ정책적 지원이 본격화
이미 많은 국가에서 고령층의 디지털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에 예산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교육 서비스, 재취업 프로그램, AI 도구 활용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즉, 기술 변화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불안과 공포만으로는 변화의 본질을 읽어낼 수 없습니다. 오히려 냉정하고 사실적인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
영화 속 디스토피아는 인간이 가진 불안의 반영일 뿐, 현실은 훨씬 더 단단하게 균형을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습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관계, 공감, 판단, 윤리적 사고는 기술이 따라올 수 없는 영역입니다.
앞으로도 기술 변화는 계속될 것입니다. 때로는 빠르고,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 세대의 길을 되돌아보면 명확한 결론이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적응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발견해 왔습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기술은 위협이 아닌 도구이며, 우리의 삶을 넓히는 자원입니다.
디스토피아는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