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煙幕を張る(えんまく を はる, 엔 마쿠 오 하루, 연막을 치다, Laying Smoke Screens)
에도 막부 말기까지 긴 오랜 기간 동안 일부 사무라이 가문들은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스스로의 높은 신분을 내려놓고 상업에 뛰어들어 번영을 누렸습니다. 다른 가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성공한 상인 가문의 아들과 딸과 혼인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무사 계층은 ‘상업에 종사하고 돈을 다루는 일은 천박하다’는 철학을 철저하게 따랐으며, 무사들의 빈곤과 불만은 1860년대 막부 체제 붕괴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도쿠가와 막부 붕괴 이후 일본이 산업국가로 급격히 변모하는 과정은 사무라이에게 매우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특권층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상업 중심 사회로의 전환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그들은 불과 20년 만에 ‘반(反)상업·반(反)금전’적 태도에서 벗어나 상업과 기업 경영의 대가로 거듭났습니다.
당시 사무라이가 새로운 산업경제에 기여한 자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군사 전술에 대한 지식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상대를 면밀히 관찰해 정보를 파악하고 이를 유리하게 활용하는 능력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또 다른 전통적 군사 기술이 바로 ‘煙幕を張る(えんまく を はる, 엔 마쿠 오 하루, 연막을 치다, Laying Smoke Screens)’, 문자 그대로 ‘연막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적에게서 자신의 활동과 진짜 의도를 숨기고, 상대방이 방심하도록 유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일본의 전통적 봉건제도는 본질적으로 적대적 구조였기 때문에, 연막술은 생존을 위한 핵심 기술이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무사 계층의 출현뿐 아니라 기사, 암살자, 사보타주 전문가인 닌자, 그리고 상대를 혼란시키는 다양한 책략을 낳았습니다.
사무라이 출신이든 평민이든, 일본의 새 산업가들은 서로 간뿐 아니라 외부인과의 거래에서도 오랜 연막 전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기쯤 되면 이것은 이미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행동 방식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말기까지 일본 정부와 대기업들은 사실상 비밀 조직처럼 운영되었습니다. 이들은 막부 시대 영주들이 하던 것과 같은 종류의 은밀한 행위를 지속했습니다. 1960년대 이후에 이르러서야 정부와 기업들은 국민에게 일정한 정보 공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연막술의 완전한 종식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기업에서는 연막술이 이미 경영 철학과 협상 스타일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연막을 친다’는 행동은 일본 문화에서 여전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특정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누구든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행위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建前(たてまえ, 다테마에, 표면적 입장)이고, 이는 곧 本音(ほんね, 혼네, 진심·본심)’를 숨기기 위한 연막술입니다.
연막을 치는 목적은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경쟁자가 가능한 한 정보의 어둠 속에 머물도록 만들고, 자신의 진짜 목표를 마지막 순간까지 숨기는 것입니다. 일본과 비즈니스 혹은 정치 협상을 해야 하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핵심에 접근하기 위해 먼저 ‘짙은 연막’을 헤치고 들어가야만 합니다.
신의와 성실로 협력하기로 계약을 해도, 이렇게 진심을 감추고 어둠속에서 숨기는 연막술을 펼치는 파트너와 얼마나 좋은 성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먼저 본심을 내보이는 것이 ‘지는 것’이라는 것을 인식을 하면 답답한 마음까지 담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렇게 일본인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