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강 수명’이 노후의 진짜 기준이 되는 이유
우리는 이미 ‘장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평균 수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 산다는 사실만으로 노년의 삶이 안정되고 의미 있어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 은퇴자 협회(AARP)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키아 민터-조던 박사가 최근 워싱턴포스트 주최 국제 행사에서 강조한 핵심 메시지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수명이 아니라 건강 수명이며, 그 격차가 개인과 사회 모두에 중대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였습니다.
민터-조던 박사는 평균 수명과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기간 사이에 약 13년의 간극이 존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통계 수치가 아니라, 노년기의 삶이 질병과 고립, 의존 속에서 얼마나 길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에 가깝습니다. 이 기간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따라 노후는 ‘버텨야 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여전히 주체적인 삶의 연장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녀가 제시한 다섯 가지 제언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에 깊이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 번째로 언급한 ‘마음챙김’은 단순한 명상 기법이 아니라, 노년기에 흔히 찾아오는 불안과 상실감,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다루는 하나의 태도입니다.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자신의 호흡과 감정 상태를 돌아보는 일은 비용도, 특별한 장비도 필요하지 않지만 정신 건강의 토대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두 번째로 강조된 신체 활동 역시 ‘무리한 운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짧고 가벼운 움직임을 꾸준히 이어가는 것만으로도 심혈관 질환이나 암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는, 운동이 더 이상 젊은 세대만의 과제가 아님을 보여줍니다. 특히 시니어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경쟁이나 기록이 아니라, 지속 가능성과 안전성입니다. 걷기, 스트레칭, 가벼운 근력 운동처럼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활동이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해법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제언인 ‘생애 전환기의 목표 재설정’은 은퇴 이후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분들이 은퇴를 사회적 역할의 종료로 받아들이지만, 민터-조던 박사는 이를 오히려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시기로 해석합니다. 자녀 양육과 생계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관심과 가치에 맞는 관계와 활동을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시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사회적 연결망을 유지하고 자존감을 지키는 중요한 기반이 됩니다.
네 번째로 제시된 장기적 생애 설계는 건강과 재정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예방 중심의 건강 관리는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삶의 선택지를 넓혀 줍니다. 최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가 다시 증가하는 흐름 역시, 단순한 소득 보완을 넘어 ‘의미 있는 역할을 유지하려는 욕구’와 맞닿아 있습니다. 이는 개인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사회가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할 영역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민터-조던 박사가 가장 강하게 언급한 것은 사회적 고립의 문제였습니다.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니라, 건강 악화와 사망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까지 지적되고 있습니다. 가족 구조의 변화와 1인 가구 증가 속에서, 지역사회와의 연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작은 모임, 봉사 활동, 돌봄 네트워크 참여 등은 노년기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안전망이 됩니다.
이 다섯 가지 제언을 관통하는 공통된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노년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설계와 선택이 가능한 삶의 한 단계라는 점입니다. 건강 수명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지만, 개인의 인식 변화 없이는 결코 늘어날 수 없습니다. 오래 사는 사회에서 이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얼마나 더 살 것인가”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