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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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요와 기술의 진보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화려한 기술의 이면에는 우리 아이들의 영혼을 잠식하는 보이지 않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유모차에 앉아 채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시선을 빼앗긴 어린 생명들을 보며, 우리 시니어 세대는 깊은 안타까움과 함께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근 발표된 통계들은 가히 충격적입니다. 2세 미만의 아이들 대다수가 유튜브의 자극적인 영상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성장과 기다림’의 가치가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즉각적인 보상과 강렬한 시각적 자극은 아이들의 뇌를 수동적으로 만듭니다. 이는 단순히 눈 건강의 문제를 넘어, 사고의 깊이를 잃고 인내심을 배우지 못하는 정서적 빈곤으로 이어질 우려가 큽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보수적인 가치의 본질을 되새겨야 합니다. 교육은 효율성의 논리로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진정한 학습과 성장은 흙을 만지고, 바람을 느끼며, 살아있는 사람의 눈을 맞추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인간의 온기가 담긴 교육을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특히 부모 세대가 맞벌이와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양육의 부담을 지고 있는 지금, 우리 시니어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시니어들은 아이들에게 ‘천천히 가는 법’을 가르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입니다. 화면 속의 화려한 원색보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읽는 동화책의 따뜻한 삽화가 아이들의 상상력을 더 풍부하게 자극합니다.

인공지능이 흉내 낼 수 없는 조부모의 옛날이야기와 삶의 지혜는 아이들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든든한 뿌리가 됩니다. 디지털 기기가 주는 도파민의 즐거움 대신, 자연을 관찰하고 타인을 배려하며 얻는 정서적 충만함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물론 시대의 흐름을 완전히 거스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술의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의 기로에서 우리는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무분별한 영상 시청을 제한하고, 스크린 대신 할머니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초기에는 아이들이 떼를 쓰며 저항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저항의 시간 또한 아이가 스스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훈련의 과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객관적인 데이터가 증명하듯, 2D 화면 속의 정보는 아이들의 3차원 현실로 온전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태블릿 PC가 아니라,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반응해 주는 따뜻한 어른의 존재입니다. 우리 시니어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의 손에서 기기를 내려놓게 하고, 대신 세상을 살아가는 올바른 태도와 예절을 가르치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합니다.

결국, 우리 아이들을 지탱하는 힘은 찰나의 영상이 아니라 대를 이어 내려오는 가족의 사랑과 전통에서 나옵니다. 디지털이라는 거대한 조류 속에서 우리 시니어 세대가 중심을 잡고 손주들의 손을 잡아준다면, 우리 아이들은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따뜻한 인간성을 지닌 인재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시니어들에게 주어진 숭고한 사명이자 보람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