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타와 말이라는 이동 및 군사 기술이 아랍의 3,000년 역사에서 수행한 역할을, 이후 아랍 문명을 주도하게 될 정보 및 언어 기술과 대비시키며 논의합니다. 낙타와 말은 아랍인들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제국을 건설하는 데 결정적인 물리적 기반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내부 분열을 가속화하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1. 초기 정체성 형성기: 이동성 기술(낙타)의 역할
낙타의 가축화는 아랍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초기 사회 구조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보였습니다.
- 낙타는 기원전 3천년경 아라비아반도 남동부에서 착유를 목적으로 가축화되었고, 다음 천년기에는 운송 동물로 사용되었습니다.
- 낙타의 길들임은 아랍 부족들이 장거리 수송 및 무역에 종사할 수 있게 했으며, 이는 다양한 북부 아라비아 방언 사용자들 간의 통일된 언어(’arabiyyah)가 형성되는 데 기여했습니다.
- 낙타는 아랍 부족들이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를 떠나 문명의 변두리를 넘어 아라비아반도 깊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어떤 의미에서는 사람들을 “애초부터 아랍인으로 만든” 존재였습니다.
- 낙타 운송업자로서의 아랍인의 역할은 기원전 853년에 낙타 1,000마리를 소유했던 아랍 지도자 긴디부(Gindibu)의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낙타는 고대 아랍인의 삶뿐만 아니라 죽음의 의식에서도 중요했습니다. 전사들은 사후에도 이동성을 보장받기 위해 낙타와 함께 묻혔습니다.
- 낙타는 운송 수단일 뿐만 아니라, 부족 간의 불화(feuds)를 해결하기 위한 혈액 대가나 신부 가격을 지불하는 통화 역할도 했습니다.
2. 제국 건설기: 군사 기술(낙타와 말의 결합)의 완성
말과 낙타를 결합한 군사 기술은 아랍인들이 약탈자이자 제국주의자로 국제 무대에 등장하는 데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습니다.
- 낙타와 말을 결합한 기술은 아랍인들에게 독특한 군사적 이점을 제공했습니다. 낙타는 말의 사료와 물을 운반하여 “창자루(spearshaft)” 역할을 했고, 말은 돌격에 사용되는 “창끝(spearhead)” 역할을 했습니다.
- 이러한 조합은 아랍 군대에 **‘힘’, ‘권력’, ‘가시’**를 의미하는 shawkah를 제공했으며, 아랍인들을 짐꾼에서 용감한 전사로, 궁극적으로 정복자로 변모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 서기 2~3세기경 낙타 안장이 발명되어 낙타 등에서 전투를 벌이는 데 도움이 되었고, 이후 **등자(stirrup)**가 도입되면서 창을 찌르거나 검을 휘두르는 데 “최고의 보조 장치”가 되었습니다.
- 이 기술은 초기 이슬람 국가의 정복(futuhat, ‘열림’)이 아프리카-유라시아 대륙 대부분에 걸쳐 가능하게 된 요인이었으며, 칼리프 우마르(Umar)는 낙타가 도달할 수 없는 곳으로는 가지 말라고 경고했을 정도였습니다.
3. 기술의 양면성과 정보 기술과의 대비
낙타와 말의 결합은 물리적 정복을 촉진했지만, 아랍 역사의 통일과 분열의 순환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는 분열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 내부 분열의 가속화: 낙타와 말의 조합이 군사 혁신으로 빠르게 확산되어 모든 아랍 부족에게 공통적인 기술이 되면서, “어느 부족도 다른 부족에 대해 장기간 우위를 점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내부 분쟁을 끊임없이 부추기고 약탈(ghazw)을 확대하여, 결국 통일 대신 분열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 정보 기술과의 대비: 낙타와 말로 대변되는 이동성 기술이 아랍의 물리적 성공을 이끌었지만, 아랍 정체성을 궁극적으로 결속한 것은 언어 및 정보 기술이었습니다. 이슬람 시대 이후, 언어(’arabiyyah)는 아랍 정체성의 가장 강력한 촉매제였으며, ’asabiyyah (집단 연대)에 동력을 부여했습니다.
- 문자 혁명으로의 전환: 이슬람과 함께 등장한 쿠란은 **”최초의 아랍어 책”**으로서 아랍어와 그 사용자들을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8세기에는 종이 제조술이 도입되고 행정 언어가 아랍어로 채택되면서(700년경), 아랍 세계는 문자 및 정보 혁명을 이루고 지식의 언어로서 세계적 지위를 확보했습니다.
- 기술의 연속성: 근현대에 이르러서도 아랍 역사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새로운 정보 기술이었습니다. 트랜지스터 라디오는 국경을 초월하는 범아랍 민족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이었고, 최근에는 소셜 미디어가 대안적인 진실을 표출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낙타와 말은 아랍인들이 정체성을 가지고 광대한 영역을 정복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기술을 제공했지만, 그 기술적 보편성으로 인해 내부 분열을 막지 못했습니다. 반면, 언어와 문자 기술로 상징되는 정보 기술은 정복의 토대이자, 아랍 세계가 정치적 지배력을 잃은 후에도 문화적 통일성을 유지하는 영속적인 기반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