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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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습니다. 기대수명은 길어지고, 은퇴 이후의 삶은 과거보다 훨씬 긴 시간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재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자녀에게 전달할 것인가는 더 이상 일부 부유층만의 고민이 아닙니다. 이제는 평범한 가정이라도 노년에 접어들면서 비슷한 질문에 마주하게 됩니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나누어야 가족이 더 평안할까?”
“아이들이 상속 문제로 갈등하지 않도록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최근 미국에서는 ‘신탁 공개 행사(Trust Reveal)’라는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초고액자산가들이 가족 모임을 열어 자녀에게 상속 구조와 자산 계획을 직접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이 흐름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히 부유층의 이야기를 넘어, 모든 시니어 세대가 생각해볼 중요한 시사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바로 이것입니다.

상속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이며, 가족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상속을 둘러싼 ‘침묵의 고통’

많은 부모는 자녀에게 재산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워합니다.

“혹시 아이가 기대기만 하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랄까?”
“내가 죽은 뒤 재산 때문에 자녀들끼리 싸우면 어쩌나?”
“재산이 많든 적든, 누가 더 받았다고 해서 서로 등을 돌릴까 두렵다.”

이런 걱정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여러 조사에서 부모의 절반 이상이 자신의 자산 현황이나 상속 계획을 자녀와 거의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침묵은 때로 더 큰 오해와 갈등을 낳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을 배려한다고 생각하지만, 자녀 입장에서는 “왜 아무것도 이야기해 주지 않았냐”고 서운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속에 관한 정보가 갑자기 공개되면 충격, 당혹감, 죄책감 등이 뒤섞여 가족 내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가족 갈등은 돈의 액수와 상관없이 발생합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형평성’이 문제되면 큰 상처로 남습니다. 반대로 충분한 대화와 투명성만 확보된다면 큰 유산도 가족을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단단하게 연결하는 힘이 됩니다.

“가족 간의 대화를 위한 설계”가 필요합니다

신탁 공개 행사에서 핵심은 상속의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이유와 철학을 설명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부모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재산을 남기는 이유는, 너희가 풍요롭게 살라는 뜻이 아니라, 너희가 삶의 목표를 더 크게 좁혀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이처럼 상속의 목적을 명확히 전달하는 과정은 자녀가 재산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어 줍니다. 갈등을 피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시니어 세대가 이와 비슷한 과정을 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자산 목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부동산, 예금, 보험, 연금, 채권, 사업체 지분 등 자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합니다. 가족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문서나 노트 형태로 정리하는 것이 좋습니다.

둘째, 상속 철학을 기록하거나 자녀와 공유하는 것입니다. 재산을 물려주는 이유, 기준, 기대하는 가족의 모습 등을 명확히 남겨야 합니다.

셋째,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신탁, 유언, 증여 등은 법적·세무적 고려가 필요하므로 전문가의 조언은 갈등을 줄이는 데 매우 유용합니다.

상속 조건은 “책임”을 함께 전한다

미국의 고액자산가들은 신탁에 조건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ㆍ자녀가 직업을 유지할 것
ㆍ일정 성적 기준을 충족할 것
ㆍ약물 검사 등 생활 규범을 지킬 것
ㆍ결혼·진학·창업 등 특정 목표를 달성할 것

이런 조건은 재산이 단순히 ‘무상 혜택’이 아니라 ‘책임과 규율’을 동반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방식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주택을 미리 증여하더라도, 대출 상환이나 생활비 일부는 스스로 감당하도록 조정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이는 자녀의 자립심을 보호하면서도 부모의 의도를 분명히 전달하는 한 방법입니다.

갈등은 자연스럽지만, 방치하면 상처가 됩니다

가족 간 갈등은 ‘생길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당연히 생기는 일’입니다.

형제는 서로 다른 삶을 살아왔고, 서로 바라보는 기준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무 조정 없이 떠나버리면, 남겨진 자녀들은 그 빈자리를 둘러싸고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갈등은 순식간에 폭발합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상속 과정이 투명하고 명확할수록 갈등의 가능성이 줄어든다고 말합니다. 상속의 기준과 방식을 충분히 설명받은 자녀들은 설령 불만이 있다 해도 현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상속의 본질은 ‘사랑의 구조화’입니다

우리는 흔히 상속을 ‘돈을 나누는 일’로 생각하지만, 실은 그보다 훨씬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상속이란,

“부모가 가족에게 남기고 싶은 가치와 철학을 구조화한 것”입니다.

그 속에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ㆍ가족이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
ㆍ자녀가 자신의 길을 책임 있게 걸어가기를 바라는 마음
ㆍ부모가 살아온 방식과 소중하게 여긴 원칙의 전수
ㆍ다음 세대가 더 큰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격려

결국 상속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어떤 마음을 담았는가’가 핵심입니다.

시니어에게 드리는 제안: 지금부터 ‘가족의 미래 지도’를 그리십시오

한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는 나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가정에서 상속 문제로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때를 기다리기보다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이 가족의 평안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시니어 세대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제안을 드립니다.

ㆍ상속을 두려움이 아닌, 준비해야 할 또 하나의 생애 과제로 인식하기
ㆍ내가 남기고 싶은 가치·철학·원칙을 글이나 말로 정리하기
ㆍ자녀와 일정한 대화를 이어가되, 필요한 부분은 전문가에게 도움받기

상속은 우리가 세상을 떠난 이후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속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가족과 나누는 대화,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가치관을 공유하는 순간들이 더 큰 선물로 남습니다.

가장 큰 유산은 금액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아름답게 설계하는 일이 바로 시니어 세대가 남길 수 있는 마지막이자 최고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