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2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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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의 가족 풍경이 변하고 있습니다. 명절이면 온 가족이 모여 북적이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각자의 삶을 존중한다는 미명 아래 만남조차 생략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시는 분들은 바로 우리 시니어 세대일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을 가족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자녀를 키우고 손주를 보며 생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릴 적 품에 안겨 재롱을 떨던 손자, 손녀가 훌쩍 자라더니, 이제는 전화 한 통 하기도 어려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를 이해하려 노력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은 서운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습니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에 소개된 한 할머니의 사연은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시대가 변했고, 관계를 맺는 방식 또한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과거의 ‘효(孝)’가 의무였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가족은 ‘개인의 행복’과 조율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특히 청소년기는 뇌과학적으로도 타인보다는 ‘자아’와 ‘친구’에 집중하는 시기입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살가운 안부’가 그들에게는 버거운 과제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쓸쓸함을 그저 참아야만 할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품격’을 보여줄 때입니다.

첫째, 기다림을 ‘방치’가 아닌 ‘신뢰’로 바꿔 생각합시다. 연락 없는 시간은 우리를 잊은 게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 뿌리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견뎌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사랑입니다. “왜 안 오냐” 채근하는 대신, “언제든 오라”며 문을 열어두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십시오.

둘째, 복잡한 대화보다 ‘밥심’을 믿으십시오. 요즘 아이들은 감정적인 대화를 부담스러워합니다. “고민이 뭐니?”라고 묻기보다 “오늘 갈비찜 해놨으니 와서 먹고 가라”는 투박한 한마디가 더 강력합니다. 음식은 여전히 가장 강력한 사랑의 언어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는 따뜻한 밥 한 끼는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인 내 편’이라는 기억을 심어줄 것입니다.

셋째, 우리 스스로의 삶을 사랑합시다. 손주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가 되지 말고, 취미를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활기차게 사십시오. 우리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우리를 만나는 것을 ‘의무’가 아닌 ‘즐거움’으로 느낄 것입니다.

결국 관계의 주도권은 ‘더 넓은 품을 가진 사람’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더 오래 살았고 더 많은 지혜를 가졌으니, 더 넓은 품으로 그들을 안아줍시다. 아이들이 날아오를 때 박수 쳐주고, 지쳐 돌아왔을 때 따뜻한 밥상을 차려주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할 시니어의 자존심이자 진정한 사랑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