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6일
11-6-1800

– 仲間(なかま, 나카마, 동료 또는 동지, The Personal Relations Room)

일본의 집단 중심 문화의 배타적 성격은 전통적으로 개인적 우정 관계에 매우 엄격한 제약을 두어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의 집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최선의 경우 경쟁자, 최악의 경우 적으로 여겨졌으며, 이런 문화적 맥락 속에서 외부인과 친구가 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에도시대(1185~1945) 동안에는 가족, 동료, 지역사회, 씨족 등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이었고, 외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는 생각은 불충하고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요컨대, 그런 일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때 상인들이 결성한 조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봉건 시대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우정의 범위는 학교 친구들로 확장되었지만, 일반적으로 그 한계를 넘지는 않았고, 오랫동안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도 일본인들이 직업이나 직종을 넘어선 친분 관계를 맺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예를 들어, 도시바의 엔지니어가 마쓰시타의 엔지니어와 함께 어울린다는 것은 공식적으로 금기시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집단 간의 벽은 점차 낮아지고 있지만, 전문직이나 전통적 직업 영역에서는 공통의 관심사가 직업적 소속보다 우선하는 시대가 되기까지는 앞으로도 2~3세대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나카마(仲間)’라는 일본어는 ‘친한 친구’, ‘동료’, ‘직장 동료’ 등을 뜻하지만, 그 어원과 사용 방식에는 강력한 문화적 뉘앙스가 담겨 있습니다.

‘나카(仲)’는 ‘관계’ 또는 ‘사이’를 뜻하고, ‘마(間)’는 ‘공간’ 또는 ‘방’을 뜻합니다. 두 단어가 합쳐지면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가까운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의미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된 표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 なかがいい(나카 가 이이) : ‘사이가 좋다’
▷ なかにはいる(나카 니 하이루) : ‘두 사람 사이에 들어가다’, 즉 ‘중재하다’
▷ なかのひと(나카 노 히토) : ‘친밀한 친구’
▷ なかよくくらす(나카 요쿠 쿠라스) : ‘화목하게 살다’

한편, ‘友達(ともだち, 토모다치)’는 ‘친구’를 뜻하는 보다 일반적인 일본어이지만, ‘仲間(なかま, 나카마)’만큼의 문화적 깊이나 의미를 지니고 있지는 않습니다.

일본어에서 ‘友達(ともだち, 토모다치)’는 지인이나 가벼운 친구 정도의 의미로 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를 ‘仲間(なかま, 나카마)’라고 소개할 때에는, 그 관계가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친밀하고 깊은 유대관계임을 내포하며, 대체로 학창 시절부터 형성된 인연을 가리킵니다.

외국인들이 일본인과 짧은 시간 안에 ‘友達(ともだち, 토모다치)’ 관계를 맺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仲間(なかま, 나카마)’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수많은 깊은 경험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외국의 비즈니스인이나 외국 거주자들은 일본인과의 ‘인간관계의 방(relationship room)’에 들어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서로 깊은 경험을 나눌 기회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이 일본인 동료와 ‘나카마 관계’를 맺었다고 믿어왔던 외국인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20년, 30년이 지난 후에 그 감정이 상호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과 실망을 느낀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이 범한 두 가지 실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友達(ともだち, 토모다치)’ 관계를 ‘仲間(なかま, 나카마)’로 착각한 것,
둘째, 일본인이 자신들을 ‘관계의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가정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의 일본인은 문화적·인종적 배타성에 깊이 익숙해져 있어, 외국인이 자신들의 ‘일본적인 방(Japanese room)’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인의 개인적 공간은 사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공간은 개인이 혼자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공유하는 ‘집단적 공간’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일본인이 외국인을 자신의 ‘나카마’로 받아들이려 해도, 그것은 곧 그가 속한 전체 그룹의 허락이 필요함을 의미합니다.

결국 외국인이 전문적 관계에서 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일본인 친구의 그룹 구성원 전체와 관계를 맺고, 그 그룹 전체로부터 ‘위협이 되지 않으며’, ‘그들의 문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그들이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만 외국인은 일본인의 인간관계 속 ‘방’—즉, ‘나카마’의 세계—에 들어갈 가능성이 생깁니다.

‘仲間(なかま, 나카마)’는 단순히 ‘친구’가 아니라, 일본 사회가 만들어낸 관계의 구조적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공간은 개인이 아닌 집단이 소유하며, 진입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 신뢰, 공유된 경험, 그리고 집단의 허락이 필요합니다. 즉, ‘仲間(なかま, 나카마)’는 공동체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관계의 방, 그 자체인 것입니다.

연수원을 총괄하던 시기에 일본에 있는 회사를 인수하고 그 피인수회사의 주요 임직원을 한국으로 불러 ‘한국 회사의 조직문화’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두어명의 직원은 ‘친구’ 관계가 된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들이 귀국한 이후에도 ‘라인(Line, SNS의 일종)’으로 첫 눈이 왔느니, 지진의 강도가 얼마였느니 소통을 이어 갔습니다. 연수원을 떠나 인수회사의 감사실장이 되어 피인수 일본 회사를 방문했을 때 그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5~6년 동안 매년 2~3달의 출장을 다니면서 밥도 먹고 함께 현지 출장도 동행했었습니다.

그래서 언젠가 은근히 “우리는 ‘友達(ともだち, 토모다치)’가 맞지?” 라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강한 긍정을 표했는데, “그럼 우리는 ‘仲間(なかま, 나카마)’일까?”라고 두 번째 질문에는 갑자기 말로 하는 답대신 난감한 표정을 보였습니다. 띄엄띄엄 공간을 같이하는 정도로는 ‘仲間(なかま, 나카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생에는 일본인 ‘友達(ともだち, 토모다치)’는 여럿 두었지만, ‘仲間(なかま, 나카마)’는 한 명도 두지 못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 중계인 또는 거간꾼 등의 뜻으로 사용하는 ‘仲間(なかま, 나카마)’의 의미와 일본 문화 속의 ‘仲間(なかま, 나카마)’는 상당히 다른 뜻으로 인식되는 해석의 간격이 크다는 점도 감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