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쇼군 통치 시대 동안, 지배 계급이었던 전문 사무라이 전사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가족 구성원들에게 무술만을 훈련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엘리트 지배 계층의 초기 세대부터, 모든 사무라이들은 유년기 초반부터 매우 정밀한 예절 양식을 훈련받았으며, 이 예절은 결국 하나의 학문이 되었고, 나아가 그 자체로 하나의 도덕 체계로 발전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도로 세련된 행동 양식은 앉는 법, 서는 법, 걷는 법, 절하는 법, 식사하는 법, 음료를 마시는 법, 물건을 건네고 받는 법, 글을 쓰는 법, 일을 하는 법, 목욕하는 법 등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행위를 포괄하였습니다. 이러한 매우 평범한 행동 하나하나가 극도로 정제되고 세부적으로 규정되어, 마침내 의식(儀式)과 같은 형식과 본질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사무라이 예절에 관한 해설에 따르면, 일상의 사소한 부분까지 이처럼 집요하게 신경 쓰는 태도는 비이성적이며 시간 낭비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러한 훈련이 오히려 시간을 절약해 주었고, 관련된 다양한 신체적 기술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더 나아가 문화사학자들은, 일상적인 행동을 의례화하는 것이 어떤 형태의 전투에서도 힘을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는 데 있어 가장 경제적이면서도 가장 우아한 방식임을 지적하였습니다.
한 역사학자에 따르면, 모든 예절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이 앉아 있는 상태에서도 상대에게 어떠한 이점도 주지 않을 만큼 정신을 단련하는 데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사무라이에게 규정된 예절을 완전히 체득한다는 것은, 자신을 환경과 조화시키고, 그 결과로 정신과 육체를 동시에 지배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무라이 예절의 완성은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 품위를 지닌 태도, Gracefulness as Morality)’, 즉 ‘우아함(gracefulness)’을 달성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 우아함은 의지에 따라 정밀하게 통제되고 지향될 수 있는 힘, 다시 말해 하나의 힘의 저장고로 간주되었습니다.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는 단지 눈을 즐겁게 하는 미적 쾌락의 원천이거나, 전능한 영주나 전사들의 자기중심적 감정에 복종하는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정신적·지적·육체적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일본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변함없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전통적인 일본 예절에 내재된 이러한 우아함입니다. 특히 료칸이나 고급 요정과 같은 전통적 일본 환경에서는 그 인상이 더욱 두드러집니다. 외국인들은 일본인의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 즉 ‘우아한’ 행동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 수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투입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외국인들은 종종 일본의 예절을 매력적이지만 고풍스러운 과거의 유물 정도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오늘날에도 매우 정밀하고 세부적인 예절에 대한 광범위한 훈련이, 과거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도덕성과 윤리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하다는 것은 단순한 신체적 몸가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상태에 이르기까지 요구되었던 자기 절제, 학습, 그리고 반복적인 수련의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모든 요소는 한 사람의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해 보면, 일본인들이 일반적으로 미국인이나 다른 예절에 덜 익숙한 외국인들에 비해 갖는 장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러한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 즉 예절을 통해 드러나는 우아함입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일본인의 형식화된 행동은 그 사람의 실제 성품이 어떠하든 간에 외국인들이 그들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물론 좋은 예절이 반드시 훌륭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해서 누구보다 더 악하거나 비열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게 좋은 예절을 체득한 사람들은 대체로 그 과정에서 좋은 도덕적 기준 또한 함께 습득하게 됩니다.
일본인들이 자신들의 문화 속에 있는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의 요소를 보존하기 위해 계속해서 성실한 노력을 기울이는 한, 그들은 사회적 관계든 비즈니스 관계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앞으로도 특별한 이점을 계속해서 지니게 될 것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gracefulness’는 대체로 개인의 기질이나 미적 감각, 혹은 사교적 매력과 같은 영역에서 이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서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는 그러한 미덕의 차원을 넘어, 한 사람의 인품을 평가하는 윤리적 기준으로 기능합니다. 말투가 거칠지 않은지, 존재감이 지나치게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지, 타인의 체면과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지, 그리고 자신의 감정이나 능력을 절제할 수 있는지와 같은 요소들이 그 사람의 도덕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잣대가 됩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일본 사회에서는 행동이 우아하면 도덕적인 사람으로 인식되고, 행동이 거칠면 비도덕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지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를 구성하는 핵심에는 먼저 절제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감정이나 욕망, 주장과 능력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 태도를 의미하며, ‘하지 않음’이 곧 ‘할 수 없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선택으로 존중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여기에 더해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가 지향하는 부드러움은 약함과 동일시되지 않습니다. 강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되, 그렇다고 약함을 가장하지도 않는 태도가 이상적인 모습으로 여겨집니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계의 분위기를 깨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가치로 평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는 철저히 타인 중심적인 윤리관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자기표현의 충실성보다는 상대가 편안함을 느끼는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며, 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말했는가보다는 그 말로 인해 상대가 상처를 받지 않았는지가 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 이른바 ‘보이지 않는 품위’로 이어집니다. 존재감은 분명히 있으되, 그 존재를 스스로 주장하지 않는 상태가 바로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모습입니다.
이러한 가치관은 일본 사회 전반에서 일상적으로 작동해 왔습니다. 가정과 교육의 영역에서는 아이들에게 ‘튀지 말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시끄럽지 않게 행동하라’거나 ‘분위기를 읽어라’와 같은 표현을 통해 태도를 가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의범절 역시 명문화된 규칙으로 주입되기보다는, 상황의 기류를 감지하고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으로 전수되어 왔습니다. 직장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로,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이를 과시할 경우 오히려 평가가 낮아질 수 있으며, 조용하지만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감정 표현이 적다고 해서 냉정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성숙하고 도덕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 문화는 한국 사회의 조직 문화와 대비되는 지점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정의감이나 열정, 진정성의 적극적인 표출을 도덕성과 연결하는 경향이 비교적 강하며, ‘할 말은 해야 한다’, ‘솔직해야 한다’는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반면 일본 사회에서는 말하지 않는 절제, 감정을 눌러두는 태도, 그리고 상대의 체면을 먼저 고려하는 침묵이 도덕적 성숙의 징표로 평가됩니다. 이로 인해 한국인은 일본 사회에서 직설적이라는 인상이 거칠다는 평가로, 열정적이라는 인상이 부담스럽다는 인식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며, 반대로 일본인은 소극적이라는 이미지가 책임 회피로 해석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결국 ‘淑やかな(しとやかな, 시토야카나)’란 “나는 옳다”고 주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 사람은 옳다”고 느끼게 만드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한 미적 감각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해 온 도덕의 형식이며, 개인의 인품은 말이나 주장보다도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통해 판단된다는 사고방식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속설입니다만, 초등학교 아이를 둔 엄마들의 동아시아 삼국지가 얘기입니다. 일본인 엄마는 “폐끼치지 말라!”라고 한답니다. 중국인 엄마는 “속지 말아라!”라고 한답니다. 한국인 엄마는 “기죽지 마라!”라고 한다는데, 맞는 말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