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마(ummah)는 아랍 사회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혈통이나 부족 연합을 넘어서는 새로운 초부족(super-tribe)으로서의 이슬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알라라는 유일신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바탕으로 통일성을 강조하며, 아랍-이슬람 문명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움마의 정의와 기원을 살펴보면, 초기 이슬람에서 무함마드에 의해 창설된 공동체는 혈연이나 상상 속의 조상이 아닌, 최고 신 알라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한 통합체였습니다. 무함마드 자신은 ‘움미(ummi)’라 불렸는데, 이는 단순히 글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넘어, 유대교나 기독교와 같은 ‘경전을 가진 공동체(ummah)’에 속하지 않은 사람을 뜻했습니다. 이 점은 움마가 독자적 정체성을 갖는 데 중요한 배경이 되었습니다. 또한 움마는 아브라함을 상징적인 ‘아버지’로, 무함마드의 아내들을 공동체의 ‘어머니’로 간주하며, 개개인의 개성을 무함마드 개인에게 대체하는 구조적 특성을 가졌습니다.
움마는 와흐다(wahdah, 통일성)를 바탕으로 강력한 사회적 결속을 이루었으나, 무함마드 사후 후계자 문제는 곧 공동체의 통일성을 위협하는 갈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메디나의 초기 이슬람 국가는 꾸란을 새로운 통합 모델로 삼았지만, 인간이 만든 체계라는 점에서 한계도 존재했습니다. 정치적 계약인 무바야아(mubaya‘ah)는 통치자와 피통치자 간의 상호 합의 구조를 의미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권력의 부패로 인해 사실상 ‘매각(selling out)’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움마의 이념적 기반인 타우히드(tawhid, 유일신론)는 신학적·정치적 통일주의를 뒷받침했으며, 이는 공동체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부 갈등도 존재했습니다. 유목민인 아으라브(a‘rab)는 자율성을 중시했기에, 무함마드가 강조한 알라의 뜻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충돌하곤 했습니다. 무함마드가 베두인들에게 “너희는 믿는 자가 아니다. 복종하는 자(aslamna)라고 하라”라고 언급한 것은 외적 복종(islam)과 내적 믿음(iman)을 구분한 사례였습니다. 이는 초기 움마 형성 과정에서 일부 구성원들이 ‘믿음 없는 소속(belonging without believing)’을 경험했음을 보여줍니다.
압바스 시대에 들어 칼리프 알-무타와킬(al-Mutawakkil)은 이즈티하드(ijtihad, 개인의 해석 노력)를 금지하고 타끌리드(taqlid, 전통 추종)를 강제했습니다. 이로 인해 꾸란 해석의 공식 권위가 확립되었으나 지적 탐구는 크게 제한되었고, 이는 움마의 지적 환경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시에 아랍어는 움마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언어가 곧 움마다”라는 인식처럼, 언어는 지리적 한계를 초월한 공동체의 진정한 결속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근현대에 들어 움마 개념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18세기 와하비즘은 메디나 초기 이슬람 국가의 모습을 재현하려 했으며, 와하비즘 이전의 삶을 알-자힐리야(al-Jahiliyyah, 무지 시대)로 규정했습니다. 20세기 초 범아랍 민족주의자 파이살 왕은 인종과 언어, 공통의 이해관계가 아랍인을 하나의 민족으로 묶을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움마의 이상과 닮았으나 세속적이고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움마는 이슬람 공동체의 이상적 통합과 정체성을 구현하는 핵심 개념이지만, 역사 속에서는 정치적 혼란, 유목민과 정착민 간의 갈등, 그리고 지적 자유의 억압 등 다양한 도전을 겪으며 복잡하게 진화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