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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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언어인 영어로 일기를 쓰면서 얻게 된 자기 성찰과 감정의 명확함

2022년 3월의 어느 따뜻한 저녁, 저는 첫 데이트를 하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 당시 저는 대학원 생활로 바빴고 일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날 밤과 그 이후의 기억은 대부분 스페인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낸 몇 통의 메시지에서 비롯됩니다. 곧 저는 만난 그 남성과 정기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영어권 사람들이 ‘situationship’이라고 부르는, 즉 연애와는 또 다른 관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개념은 데이트처럼 제 모국어인 스페인어에는 명확한 대응어가 없습니다.

몇 달 후 첫 이별을 겪은 뒤, 저는 그에 대해 일기로 기록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의 모국어이자 우리가 소통하던 언어인 영어, 즉 저에게는 제2외국어로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그에 대해 글을 쓰면서 저는 영어를 통해 어떤 의미나 희망을 담으려 했습니다. 2022년 12월에는 “우리가 결국 낯선 두 사람이 되어, 또 다른 시간의 흩어진 추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고 썼습니다.

처음에는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점차 스페인어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제 삶을 넓게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는 저에게 제 정체성과 감정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제2외국어로 일기를 쓰는 경험은 저를 제 감정의 외부 관찰자로 만들어, 모국어로는 얻기 힘든 명확함을 주었습니다. 스페인어로 일기를 쓸 때는 익숙함에 기대어 생각을 깊이 있게 하지 못했음을 나중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2021년 1월에는 “영원히 회색인 1월의 하늘” 같은 문장으로 가득 찬 산만한 글을 썼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빠르게 써내려간 글이었습니다. 반면 영어로 글을 쓸 때는 더 정확한 표현을 찾아야 했고, 그 과정에서 생각이 느려지고 정리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통해 삶의 고민을 마주하는 일이 더 견딜 만해졌습니다. 처음에는 관계를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던 일이, 점차 자기 성찰의 치료적 과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작년 여름에는 정체성의 위기를 겪으며, 고향인 코로나와 현재 살고 있는 브루클린 사이에서 감정적으로 방황했습니다. 어느 곳도 완전히 저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했고, 그 절망을 영어로 쓰는 것이 더 깊은 내면 성찰의 공간을 주었습니다. “한 곳에 정착하는 것이 가능한가? 내 일부가 늘 떠나고 있다면?”이라고 썼습니다. 모국어의 날것 같은 감정에서 거리를 두자, 오히려 제 진짜 모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인 이스마엘 라모스는 저와는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시가 갈리시아어(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와 가까운 언어)로 쓸 때 가장 생생해진다고 말합니다. 감정과 경험을 언어와 분리하는 것은 그에게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몸의 언어가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의 말이 맞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은 저에게 여전히 낯설고, 스페인어만큼 깊이 와닿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낯섦이 오히려 저를 해방시켜줍니다. 미국 조지아에서 교환학생 시절, 그리고 마드리드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도 저는 모국어로 현실을 해석하려 했지만, 그 친밀함은 감정을 분석할 때는 오히려 방해가 되었습니다. 영어로는 “그를 볼 때마다 느껴지던 긴장감이 더 이상 없다”와 같은 표현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었지만, 스페인어로는 결코 그렇게 쓸 수 없었습니다. 제2외국어로 글을 쓰는 것은 저를 언어적 사고에서 해방시켜, 저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다른 작가들도 제3외국어나 제2외국어로 일기를 쓰는 경험을 받아들였습니다.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이탈리아어로 일기를 쓰며 자신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이 일기를 쓰는 사람이 내가 아닌 것 같다”고 그녀는 썼지만, “이것이야말로 내 가장 진실하고, 가장 취약한 부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저 역시 스페인어로 일기를 쓸 때 가장 노출된 느낌이 들었고, 어릴 적부터 익숙한 리듬에 맞춰 글을 썼습니다. 낯선 언어로 정체성을 탐구하는 일은 불편함을 동반하지만, 영어 일기는 저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언어의 거리를 통해 제 정체성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되었습니다.

영어로 글을 쓰면서 저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불안 등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외국어로 일기를 쓰는 일은 실수투성이지만,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결국 저에게 저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선물해주었습니다.

제2외국어인 영어로 일기를 쓰는 경험을 통해, 모국어로는 얻기 힘든 자기 성찰과 감정의 명확함을 얻었고, 이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글쓰기란 결국 내면을 바라보는 방식입니다. 새로운 언어로 글을 쓰며 저는 저 자신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사는 2025년 5월 2일,  아틀랜틱(The Atlantic) 부편집장인 알렉스 포르토(Alex Maroño Porto)의 영문 기사 “The Things I Can Write Only in English”를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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