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어는 아랍 정체성 초기 형성의 맥락에서 단순한 언어 이상의 가장 일관되고 결정적인 특징이자 집단 결속(’asabiyyah)의 촉매제 역할을 했습니다.
초기 아랍 정체성 형성의 핵심 요소 및 아랍어의 역할
아랍 정체성 형성기는 기원전 900년부터 서기 600년(Emergence)까지로 설정되며, 이 시기 동안 아랍어는 통일된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 있어 압도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 집단 정체성의 유일한 일관된 특징: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이름(’arab)과 가장 일관된 규정적 특징(only consistent defining feature)인 언어 자체를 유목민적 성격(nomadism and footlooseness)의 전형인 부족 ’arab(소문자 아랍)으로부터 가져왔습니다. ’arab이라는 이름 자체의 원래 의미는 “혼합되거나 섞인 사람들”일 수 있으며, 이는 초기 아랍인들이 유전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 여러 기원의 집합체였음을 시사합니다. 이처럼 아랍인들이 유전적으로 통일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어(linguistics)를 통해 점점 더 결속되었습니다. 결국, 아랍어(’arabiyyah)는 아랍 정체성의 가장 강력한 촉매제(strongest catalyst)였으며, 집단 연대(’asabiyyah)에 동력을 제공하는 민족적 천재성(ethnic genius)의 역할을 했습니다.
- 고급 아랍어(’arabiyyah)의 등장과 문화적 통합: 기원전 1천 년대에 아랍 부족들이 장거리 운송업에 종사하게 되면서, 다양한 북부 아라비아 방언 사용자들 사이에 소통 가능한 언어가 필요해졌고, 이를 통해 고급 아랍어(’arabiyyah)라는 통일 언어의 ‘고급 형태’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arabiyyah는 일상어가 아니었으며, 신탁 제공 및 시 낭송에 사용되는 “신비로운 혀(mystical tongue)”였습니다.
- 시(Poetry)의 역할: 아랍 시는 아랍 사회의 ‘기록보관소(archive)’ 역할을 했으며, 아랍인을 무함마드 이전부터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민족(nation)”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랍 시는 다양한 방언의 요소들을 통합하는 “빛나는 언어적 콜라주(glittering linguistic collage)”를 형성하여, 통일된 문화적 정체성(Kulturnation)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외부 접촉 및 정체성 재확인: 초기 아랍인들은 아랍 정착 사회의 주변부에서 살았으며, 이들은 아시리아, 로마, 페르시아와 같은 주변 제국들과 접촉하면서 스스로를 정의했습니다.
- 외부의 규정: 서기 4세기경,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같은 초강대국들은 아랍 부족 지도자들에게 ‘모든 아랍인의 왕(king of all the Arabs)’이라는 칭호를 부여하거나 인정함으로써 통일의 개념을 강화했습니다. 이는 아랍 통일의 개념이 외부 강대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의해 먼저 유입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 언어를 통한 반작용: 이러한 외부 세력의 간섭과 비난은 아랍인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더욱 강하게 인식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을 ’arab(아랍어 사용자)로, 비아랍인들을 ’ajam(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며, 자신들의 언어와 수사학을 비아랍 세계(특히 페르시아)의 비논리적이고 낮은 지적 능력과 대비시켰습니다. 언어는 곧 논리(logic)이자 지혜의 영역으로 여겨졌으며, 이는 아랍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본적인 요소가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아랍어는 초기 아랍 부족들이 서로 교류하고 외부 세계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문화적 구심점을 제공했으며, 혈통적 다양성을 넘어 집단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했습니다. 통일과 분열의 순환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통일의 이상은 언어를 통해 창조되었고, 이러한 언어적 유산은 이슬람 시대 이후에도 아랍 세계를 결속시키는 유일한 끈으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