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5일
9-5-2200

나흐다(Nahdah)는 아랍 세계의 근현대 역사와 정체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핵심 개념 및 용어입니다. 이 용어는 19세기에 시작된 ‘아랍의 각성(Arab Awakening)’ 또는 ‘아랍 르네상스(Arab Renaissance)’를 의미하며, 주로 언어, 문화, 그리고 정치적 정체성의 회복을 목표로 한 광범위한 지적, 문화적, 정치적 운동을 포괄합니다 [xix, 191, 192].

핵심 개념 및 용어의 맥락에서 나흐다에 대한 논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 정의 및 시기:
    • 나흐다는 19세기부터 시작된 **’아랍 르네상스’ 또는 ‘각성’**을 지칭합니다 [xix, 215, 426].
    • 이 운동은 아랍어 인쇄술이 서서히 활성화되면서 시작되었고, 이후 트랜지스터 라디오, 위성 TV, 소셜 미디어와 같은 기술 발전과 함께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xix]. 이는 아랍어와 아랍 문화의 광범위한 보급에 기여했습니다 [xix].
  • 주요 특징 및 목표:
    • 언어의 재발견과 민족 정체성: 나흐다는 근본적으로 아랍어라는 ‘방대한 보물’의 존재에 대한 각성이었습니다. 이 운동의 주창자들은 아랍어가 혈연, 종교, 관습보다 더 확실하게 아랍인들을 결속시키는 본질이자 실체라고 믿었습니다. 1956년 바트(Ba’th)당 학자는 “우리의 언어는 병사들이 행진하는 깃발과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정치적, 문화적 통합: 나흐다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 대한 저항과 아랍 민족주의의 부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언어적 통일성을 바탕으로 범아랍주의(pan-Arabism)와 같은 정치적 이상이 확산되었습니다 [xix, 466, 472].
    • 문학 및 지적 부흥: 19세기 아랍 각성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인 레바논 마론파 기독교 학자 이브라힘 알-야지즈(Ibrahim al-Yaziji)와 같은 활동가들은 고대부터 그래왔듯이 시를 통해 사상을 행동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습니다. 고전 아랍어 학문(문법, 사전학, 문헌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증가했습니다.
  • 한계와 복잡성:
    • 느린 확산과 지리적 편중: 초기 아랍 각성은 주로 **’지적인 기독교 레반트 아랍 각성(Intellectual Christian Levantine Arab Awakening)’**이었습니다. 아랍 세계 전역으로 아랍 정신이 되살아나는 데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일부 지역(예: 예멘)은 거의 1세기 동안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 이상과 현실의 괴리: 1980년대 모로코 문화 역사가 무함마드 알-자비리(Muhammad al-Jabiri)는 “현대 아랍의 각성은 아직 현실이 되지 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공화국(Republic)’이라는 개념이나 ‘시민(Citizens)’이라는 용어가 공식 명칭에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는 현실에서 거의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아랍 세계는 정치적으로 여전히 **’하나의 거대한 쥐라기 공원’**으로 묘사되기도 했습니다.
    • 내부 분열: 통일을 목표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세르주의(Nasserism)와 바트주의(Ba’thism)와 같은 범아랍주의적 움직임조차 내부 분열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랍어는 여러 부족 방언과 새로운 정복지 방언의 혼합으로 인해 **’분열된 새로운 어휘’**를 형성하기도 했습니다.

결론적으로, 나흐다는 아랍 세계가 언어적, 문화적 유산을 통해 정체성을 재정의하고 정치적 통합을 추구하려 했던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한계와 내부적 도전이 있었지만, 이는 아랍이라는 개념을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로 확장시키고, 오늘날까지 아랍 정체성에 깊이 새겨진 ‘핵심 개념 및 용어’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