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24일
8-22-2200

아랍(’arab)은 아랍 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개념이자 용어 중 하나로, 그 의미는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발전해 왔습니다. 이 용어는 단순히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을 넘어, 언어, 문화, 사회 구조, 그리고 정체성의 깊은 측면을 포괄합니다.

핵심 개념 및 용어의 더 큰 맥락에서 아랍(’arab)에 관해 논의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원적 및 역사적 의미의 다층성:
    •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는 **아랍(’arab)**이 원래 **’사막 사람들, 유목민들’**을 의미하며, 이는 바다위(badawi), 즉 베두인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초기 아시리아 및 남부 아라비아 비문에서도 이러한 의미가 나타났으며, 20세기 초까지도 사용되었습니다.
    • 또 다른 가능성은 ‘서로 섞이거나 합쳐진 [이질적인 사람들]‘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내재된 불화와 단결하려는 시도를 동시에 암시합니다.
    •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나중에 생겨난 것으로, 이슬람 시대에 이르러서야 확립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아랍 민족으로서의 자의식은 언어를 공유하는 것에 기반하여 더 일찍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 쿠란에서 사용된 **아랍(a’rab)**은 주로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았던 정착민 환경의 가장자리에 살던 철저한 유목민들을 지칭합니다. 이들은 “불신과 위선이 가장 심한 자들”로 묘사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들의 습격 정신은 초기 이슬람 공동체의 군사적 성공에 필수적이었습니다.
  • 바다위(badawi, 유목 사회)와 하드하리(hadari, 정착 사회)와의 관계:
    • 아랍 사회는 기록된 역사 초기부터 **바다위(badawi, 유목 사회)**와 **하드하리(hadari, 정착 사회)**라는 두 가지 대조적인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왔습니다. **아랍(’arab)**이라는 용어는 주로 유목민적 측면을 대표하며, 그들의 기본적인 ‘제도’는 습격(ghazw)으로 묘사됩니다.
    • 예언자 무함마드의 성공은 유목민과 정착민 시스템의 요소를 결합하여 초기 이슬람 국가를 수립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 이븐 할둔(Ibn Khaldun)은 유목 부족(badw)이 집단 연대(’asabiyyah)를 통해 군사력을 얻고 정착 국가를 장악하여 새로운 왕조를 세우지만, 정착 후에는 활력을 잃고 결국 새로운 유목민에게 정복당한다는 이론을 제시했습니다.
    • 오늘날 실제 베두인의 수는 극히 적지만, 그들의 행동 양식은 여전히 아랍 세계 주요 행위자들의 행동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2011년 민주화 혁명의 실패는 ‘정착 사회’에 대한 ‘베두인 시스템’의 재확인과 관련이 있습니다. 현대 아랍 독재자들이 ‘시민 사회’에 대해 약탈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러한 ‘바다위’적 특성과 연결될 수 있습니다.
    • 아랍 정체성의 중요한 딜레마는 아랍인들이 시민 사회에 순응할수록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는다는 인식입니다.
  • 언어(’arabiyyah)와 정체성(’urubah, ’asabiyyah)의 핵심적 역할:
    • **고급 아랍어(high Arabic, ’arabiyyah)**는 부족 예언자와 시인들의 입을 통해 발전했으며, 더 넓은 아랍 정체성의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 이동성은 아랍어의 ‘어머니’였고, 아랍어는 ‘아랍인의 어머니’였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나 특정 ‘사람들'(남부 아라비아적 의미의 sha’b)이 아니라, 부족들의 집합체로서 그 부분들의 합보다 큰 ‘민족적 게슈탈트’를 형성했습니다.
    • 언어는 아랍인들을 하나로 묶고 정체성과 통일성을 부여할 수 있었던 유일한 유대였습니다. 이슬람이 가져온 통일성조차 궁극적으로는 언어에 기반했습니다.
    • **아랍(’arab)**은 **비아랍인(’ajam)**과 대조적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축했습니다. ’ajam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자’를 의미했으며, 이는 언어적 우월성을 기반으로 한 일종의 ‘언어적 민족주의’를 형성했습니다.
    • **집단 연대(’asabiyyah)**는 ‘단결된 언어’가 ‘단결된 정치적 목소리’로 이어지면서 강화되었습니다.
  • 아랍 정체성(’urubah)의 역사적 변천:
    • 초기 (이슬람 이전): **아랍(’arab)**은 유목 생활 방식(낙타 사육, 목초지 추구, 낙타 운송 무역)을 공유하며 서로 교류했고, 이는 문화적 통일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아시리아인들이 이들을 Aribi라고 불렀고, 기원후 328년 나마라 비문(Namarah epitaph)에서 아랍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모든 아랍인의 왕’이라고 칭하며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합니다.
    • 이슬람 시대 (초기 우마이야 왕조): 제국 건설의 공유된 경험이 아랍인들을 더욱 결속시켰습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아랍(’arab)**을 국지적인 숭배의 수호자에서 글로벌 문화의 선봉으로 재정의했습니다. 우마이야 칼리프는 사막의 유목 아랍 부족을 군사적 중추로 활용하며, 아랍(’arab) 정체성을 공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이주(hijrah)는 옛 유목민적 생활 방식(목축-습격)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는 **아랍(’arab)**의 가장 오래된 의미를 약화시키기 시작했습니다.
    • 압바스 왕조 시대: 비아랍인(mawlas)의 동화가 가속화되면서, 혈통에 기반한 아랍(’arab) 정체성의 중요성이 점차 약해졌습니다. 압바스 왕조는 비아랍적이고 호라산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의 시대(’asr al-tadwin)’**에는 유목민적 정신(badw ethos)이 집단 기억 속에 영웅적으로 삽입되어 이상적인 ‘국민적 페르소나’가 되었습니다.
    • 쇠퇴기 (오스만 시대): **아랍(’arab)**이라는 용어는 다시 ‘문명의 한계를 벗어나 가축을 기르고 약탈하는 변방 부족’이라는 옛 의미로 회귀했습니다. 아랍 정체성은 쇠퇴했으며, ‘거의 사라질 뻔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 근대적 재등장 (나흐다): 19세기 **나흐다(Nahdah, ‘아랍 부흥 운동’)**를 통해 아랍 정체성은 공유된 언어, 문화, 역사를 바탕으로 ‘재발견’되거나 ‘재창조’되었습니다. 아랍 민족주의는 언어가 아랍 민족의 본질이자 실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을 아랍인으로 정의하는 새로운 통일성을 추구했습니다.
  • 현대적 관련성:
    • 오늘날에도 **아랍(’arab)**인들은 언어를 통해 연결된 단일한 **문화 공동체(Kulturnation)**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은 땅에 사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산다”는 표현은 이러한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 ‘베두인 시스템’의 재확인과 ‘정착민 시스템’에 대한 유목민적 역동성의 지속적인 영향은 현대 아랍 사회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
    • 그러나 아랍어가 지나치게 ‘순수성’을 강조하고 일상적인 구어체와 괴리되면서, 많은 아랍인들이 공식적인 글쓰기나 말하기에 불편함을 느끼고, 이는 개별적인 목소리를 억압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랍(’arab)은 단순한 민족적 명칭을 넘어 유목민과 정착민이라는 사회 구조의 이중성, 고급 아랍어라는 언어적 유대, 그리고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핵심적인 개념입니다. 그 의미는 역사 전반에 걸쳐 유동적이었으며, 이는 아랍 세계의 통일과 분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맥락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