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흐다(wahdah)는 아랍 역사와 문화 속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이 단어는 겉으로는 ‘통일’을 의미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립’, ‘배제’, ‘분리’, 곧 ‘고독함’이라는 이중적 의미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개인의 외로운 상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고립된 상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와흐다라는 개념은 아랍 공동체가 지닌 이상적 통합의 희망과 동시에 현실적 불화의 가능성을 드러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 이중적 의미
‘와흐다’는 어근 ‘와히드(wahid, 하나)’와 연결되어 ‘하나됨’을 뜻하지만, 가장 오래된 의미는 ‘고립과 분리’였습니다. 이는 영웅적인 개인의 고립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고독을 나타내며, 아랍 사회의 근본적 긴장을 내포합니다.
2. 역사적 맥락과 적용
- 오랜 염원: 아랍 역사에서 통일은 종종 신기루와 같은 이상으로 묘사되었고, 실현되더라도 일시적이었습니다. 디 알-룸마의 시에 나타나듯, 통일된 민족이 분열될 것이라 상상조차 못한 시대도 있었습니다.
- 무함마드와 초기 이슬람 국가: 예언자 무함마드는 ‘단일 신에 대한 충성’과 ‘언어의 권능’을 바탕으로 아랍 세계를 결집시켰습니다. 메디나의 이슬람 국가는 정주 사회(hadari)와 유목 사회(badawi)를 아우르는 통합의 모델이었으며, 이는 정치적·신학적으로 궁극적인 통일을 지향했습니다.
- 사바(Saba) 문명과의 연계: 남아라비아의 고대 사바 문명에서도 신을 공유하는 종교적 언약이 정치적 통합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사바의 국가 신 일마카(Ilmaqah)에게 바치는 순례는 연방적 통합을 유지하는 방식이었고, 이는 훗날 쿠란의 ‘알라의 밧줄(habl Allah)’ 개념과 이어졌습니다.
- 와하브 운동(18세기): ‘타우히드(tawhid, 신의 유일성)’을 중심으로 한 와하브 운동은 초기 이슬람 공동체를 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통일은 내향적이고 고립적인 성격을 지녔습니다.
- 범아랍 민족주의(19세기 이후): 세속적 민족주의는 와하브즘과 달리 ‘고립’이 아니라 ‘통합’을 지향했습니다. 특히 언어를 아랍인의 본질적 결속력으로 보았으며, 이는 혈연·종교보다 더 강력한 유대라고 여겼습니다.
3. 통일의 도전
- 언어의 다양성: 고급 아랍어(High Arabic)는 상상의 공동체를 형성했지만, 실제로는 방언의 차이가 분열을 낳았습니다.
- 정치적 현실: ‘시야사(siyasah)’라는 정치 개념 자체가 ‘말과 낙타를 길들이는 것’에서 출발했듯, 정치란 합의보다 권위와 복종, 침묵을 요구하는 체제였습니다.
- 내부 갈등: 종파(시아·수니), 부족, 정주민과 유목민의 오래된 갈등은 이슬람의 통일 사상을 끊임없이 위협했습니다. 쿠란조차도 ‘만약 주님께서 원하셨다면 인간은 하나의 공동체가 되었을 것이나, 그들은 끊임없이 다툴 것이다’라고 언급합니다.
- 외부 영향: 제국주의의 간섭과 인위적 국경 획정은 분열을 더욱 심화시켰습니다.
4. 결론
와흐다(wahdah)는 아랍 정체성의 깊은 열망을 담고 있으나, 동시에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드러내는 복합적인 개념입니다. 아랍 세계의 역사는 ‘통합’이라는 희망과 ‘불화’라는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해 왔으며, 와흐다라는 개념은 바로 그 긴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