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왈라(mawla)는 아랍-이슬람 문명의 사회적, 정치적 역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로, 초기 이슬람 사회에서 비아랍인이 아랍 부족에 편입되거나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사회적 지위를 가리킵니다.
무왈라는 본래 아랍 부족에 ‘클라이언트’ 또는 ‘계열사’의 형태로 소속된 비아랍 무슬림을 지칭하는 말이었습니다. 이는 이슬람 이전에도 혈연이 아닌 방식으로 부족에 합류한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으며, 이슬람 초기에는 무슬림이 되는 과정이 곧 무왈라가 되는 것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아랍 부족과의 종속적 관계를 전제로 한 지위였던 셈입니다. 일부 학자는 무왈라가 되는 행위를 곧 ‘복종(islam)’이라는 더 큰 의미의 범주 속에서 이해하기도 했습니다.
정복 전쟁과 개종을 통해 아랍 사회에 합류한 비아랍 무슬림, 즉 마왈리(mawali)는 새로운 인적 자원으로 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지만, 동시에 아랍인들의 차별과 무시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9세기의 문학가 알-자히즈(al-Jahiz)는 마왈리를 ‘공동체의 짐’이라 표현했으며, 이는 그들의 사회적 배제를 보여줍니다. 또한 우마이야 시대에는 권력자들이 마왈리를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억압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칼리프 히샴은 이라크의 부지사에게 페르시아계 마왈리를 고문할 것을 명령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마왈리는 단순히 소외된 집단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압바스 혁명은 바로 이들의 불만을 토대로 확산되었고, 특히 코라산 출신의 비아랍 군대가 압바스 왕조의 핵심 지지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칼리프 알-만수르는 마왈리를 적극적으로 관리직에 등용하며 “아랍인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마왈리가 더 이상 주변적 존재가 아니라 제국 운영의 필수적 인력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압바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마왈리 출신의 지식인들은 아랍어 학문과 이슬람 지성사의 발전에 중대한 기여를 했습니다. 이는 비아랍인이 오히려 아랍 문화와 언어의 정립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 ‘아랍인’이라는 정체성은 혈연적 의미에서 점차 벗어나,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는 문화적 의미로 확장되었습니다. 이러한 정체성의 전환은 곧 마왈리의 역할 증대와 깊은 관련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무왈라는 단순히 부족 내의 클라이언트 지위를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초기 이슬람 사회에서 비아랍 개종자들이 차지한 복합적인 사회적 위치를 보여주는 개념이었습니다. 이 개념은 아랍 공동체의 통합과 갈등을 동시에 드러내며, 더 나아가 아랍-이슬람 문명의 정체성이 변화해 가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