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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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후리야(jumhuriyyah)는 아랍 세계의 근대 정치 개념과 그 현실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용어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표면적으로는 ‘공화국’을 뜻하지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와 복잡성은 아랍 정치사의 본질적 특성을 보여줍니다.

줌후리야의 기원은 아랍어 ‘jumhur’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1870년대 이후 ‘대중의 통치’를 의미하는 ‘공화국’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이집트에서 ‘마시야카(mashyakhah, 셰이크 통치)’라는 독특한 형태로 시도되었으나,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랍 국가들이 국가 명칭에 ‘공화국’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본래 의미가 현실에 반영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인민대중(jumhur)’의 통치를 가리키지만, 실제로는 법적 권리와 의무를 지닌 ‘시민(citizens)’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평가됩니다. 오히려 국가의 통치 대상은 여전히 ‘신민(subjects)’에 가깝다는 비판이 강하게 제기됩니다. 정치적 현실은 ‘하나의 거대한 쥐라기 공원’으로 묘사되기도 하며, 이는 ‘영원히 현재하는 과거(ever-present past)’라는 아랍 세계 정치문화의 특징을 드러냅니다.

줌후리야와 밀접히 연관된 개념은 ‘디무크라티야(dimuqratiyah,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아랍의 공화국들은 자유 언론이나 독립적 사법 체계가 부재하기 때문에 실질적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이는 ‘할부식 군주제’로 작동하며, 지도자들이 90%를 훌쩍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는 것은 진정한 다수결이 아니라 만장일치에 대한 집착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민주주의라는 외래어보다 오히려 ‘무바야아(mubaya’ah, 충성 맹세)’라는 전통 용어가 현실에 더 부합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원래 상호적 ‘거래’를 의미하던 무바야아는 실제로는 ‘팔아넘김(selling out)’을 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줌후리야는 나흐다(Nahdah, 아랍 르네상스)가 내세운 근대화와 자결의 이상을 담고 있는 동시에, 그 이상이 권위주의와 분열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좌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개념입니다. 아랍어라는 언어적 통일성을 기반으로 한 민족주의적 열망이 정치 체제에서는 권위주의와 배제의 현실로 드러나는 현상은 줌후리야라는 용어를 통해 집약적으로 드러납니다. 결국 줌후리야는 아랍 정체성이 지닌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괴리를 상징하는 핵심 키워드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