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끌리드(taqlid)는 아랍 사회의 핵심 개념이자 용어 가운데 하나로, ‘모방’ 또는 ‘전통 추종’을 의미하며, 신의 말씀을 이해함에 있어 반드시 공식적으로 인정된 해석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가리킵니다. 이 개념은 초기 이슬람 지성사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루며, 개인의 독자적 해석을 중시하는 이즈티하드(ijtihad)와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타끌리드는 개인의 해석적 노력을 강조하는 이즈티하드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등장하였습니다. 이는 꾸란의 의미를 개인이 직접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대신, 이미 확립된 권위 있는 해석을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료에서는 이를 “이즈티하드의 문이 닫히는 것”으로 묘사하며, 한 평론가는 이를 “사고의 중단”에 비유하였습니다.
역사적으로 타끌리드는 압바스 시대 칼리프 알-마으문의 세 번째 후계자인 알-무타와킬의 통치기에 교리적 전환과 함께 제도적으로 강제되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무으타질라 학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논쟁이 금지되었고, 꾸란이 창조된 책이며 인간이 해석할 수 있다는 사상은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나자르’나 ‘라으이’와 같이 개인적 의견 형성과 사변적 활동도 의심받게 되었으며, 무함마드의 언행 가운데 일부는 이러한 정책적 변화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었습니다.
타끌리드의 확립은 이슬람 공동체가 신성한 계시의 의미를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이슬람은 형식적으로 사제 계급이 없는 종교라 자부했지만, 실제로는 언어학자, 주석가, 법학자 등 권위자들의 해석을 통해 신성한 영역에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의미가 고정되고 과거의 해석 속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는 “의미가 미라화되었다”는 표현으로 요약됩니다.
또한, 9세기부터 19세기까지 장기간에 걸쳐 아랍인의 개념은 분열적 의미를 띠었습니다. 문화·언어적 차원에서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모두 아랍인이었으나, 일상적 차원에서는 ‘아랍인’이 미개한 유목민을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타끌리드는 이슬람 법학의 사유 세계 전체를 형성하였으며, 아랍 문명은 경험적 탐구보다 전통적 텍스트와 수사적 진실을 추구하는 길을 따르게 되었습니다. 꾸란 자체가 명확한 구절과 그렇지 않은 구절이 있음을 인정하고, 숨겨진 의미는 알라 외에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타끌리드는 이 불확실성을 공식적 해석으로 메워버린 셈이었습니다.
결국 타끌리드는 이슬람 세계에서 종교적 권위와 해석, 그리고 지적 탐구의 본질을 재편한 핵심 개념이었습니다. 이는 개인의 사유와 해석의 자유를 제약하고, 공식적 전통과 권위가 종교적·사회적 담론을 지배하게 만든 결정적 전환을 상징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