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2일
4970_9264_4117

– 関西(かんさい, 칸사이; 관서), 関東(かんとう, 칸토; 관동); 장벽 동서(東西)의 문화 코드

일본에는 일상 대화나 비즈니스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지역 및 지리적 “코드워드”가 십여 가지 존재합니다. 이 가운데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두 용어는 “칸사이(関西, かんさい;관서)”와 “칸토(関東, かんとう;관동)”입니다.

“칸사이”는 문자 그대로 “장벽의 서쪽”을 의미하고, “칸토”는 “장벽의 동쪽”을 뜻합니다.

칸사이는 지리적 개념보다는 문화적·역사적 의미에 가까우며, 주로 고베( 神戸;신호), 교토(京都; 경도), 오사카(大阪; 대판) 및 그 인근 지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반면 칸토는 도쿄(東京)와 그 주변 칸토 평야 지역을 지칭합니다.

이 두 용어는 10세기부터 일본의 동서 지역을 구분하기 위한 표현으로 사용되었으며, 그 기준점은 시가현에 위치한 오사카 마을(현재의 대도시 오사카와는 다른 장소)에 있던 군사 검문소인 ‘세키쇼(関所, せきしょ)’였습니다. 이곳은 혼슈(本州) 본섬의 거의 중심에 해당하는 위치였습니다.

가마쿠라 시대(1185~1333년)에는 칸사이와 칸토의 경계가 다음 세 곳의 세키쇼에 의해 정해졌습니다: 미에현 스즈카, 기후현 후와, 후쿠이현 아라치. 이후 도카와 막부 말기까지는 가나가와현 아시노호 호숫가에 있는 하코네로 경계선이 옮겨졌습니다.

1868년, 천황이 교토에서 에도(도쿄)로 거처를 옮긴 이후, 칸사이는 다시 교토-오사카-고베 지역을 뜻하는 문화적·산업적 개념으로 자리잡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칸토는 도쿄를 포함한 칸토 평야와 그 위성도시들—요코하마(横浜), 가와사키(川崎), 오미야(大宮), 요코스카(横須賀) 등—을 포함하는 지역 개념으로 정착했습니다.

오늘날 일본에서는 이 두 지역명을 통해 언어 방언, 성향, 행동양식은 물론 음식 기호 등 다양한 문화적 특성을 구분합니다. 일반적으로 칸사이 사람들은 칸토 사람들보다 더 비즈니스에 헌신적인 경향이 있다고 하며, 칸토 사람들은 오히려 유희와 즐거움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고 여겨집니다. 교토 시민들은 “전통 일본 문화”를 가장 잘 체현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일본인의 인식 속에 뚜렷하게 자리잡고 있으며,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신념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흥미롭게도, 도쿄 사람들은 일상 대화에서 칸사이를 언급하는 빈도가 높지만, 칸사이 사람들은 도쿄 및 그 주변 도시들을 지칭할 때 ‘칸토’라는 표현을 비교적 적게 사용합니다.

이 두 문화 지역 외에도, 일본은 네 개의 주요 산업지대와 네 개의 2차 산업지대로 나뉘어 있습니다.

4대 주요 산업지대는 다음과 같습니다:

ㆍ게이힌(京浜, けいひん): 도쿄 수도권과 가나가와현 전체
ㆍ주쿄(中京, ちゅうきょう): 아이치현과 미에현
ㆍ한신(阪神, はんしん): 오사카 수도권과 효고현 전체
ㆍ기타큐슈(北九州, きたきゅうしゅう): 후쿠오카 수도권

4개의 2차 산업지대는:
ㆍ게이요(京葉, けいよう): 도쿄 동쪽의 지바현
ㆍ도카이(東海, とうかい): 시즈오카현
ㆍ세토우치(瀬戸内, せとうち): 오카야마, 히로시마, 에히메현
ㆍ호쿠리쿠(北陸, ほくりく): 니가타, 도야마, 후쿠이, 이시카와현

혼슈 북부 지역은 종종 “도호쿠(東北, とうほく, Tohoku)”라 불리며, 아오모리현(青森県), 이와테현(岩手県), 아키타현(秋田県), 야마가타현(山形県), 미야기현(宮城県), 후쿠시마현(福島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일본 봉건시대에는 데와(出羽)와 무쓰(陸奥)로 불리던 유서 깊은 영지였으며, 고대에는 아이누족(アイヌ, Ainu)의 마지막 거점으로 사실상 일본 외의 “다른 나라” 취급을 받았습니다. 가마쿠라 시대에 이르러서야 일본 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도 시대(1603~1868) 동안, 하코네 세키쇼(箱根関所)는 서부와 남부 일본에서 막부 수도인 에도로 진입하는 유일한 공식 통로로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하코네는 해발 고도 1천 m에 이르는 지점에 위치해 있었으며, 군사적 검문소이자 세관 및 출입국 관리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곳을 통과하는 모든 사람은 공식적인 통행 허가증을 소지해야 했으며, 이를 우회하는 경우에는 사형에 처해질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간사이(오사카, 교토 등)와 간토(도쿄 등) 지역감정은 오랜 역사와 문화적 차이, 그리고 다양한 사회 현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나며, 최근에도 그 부정적 영향, 즉 ‘폐해’가 뉴스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일본의 수도는 오랫동안 간사이(특히 교토)에 있었으나, 1867년 메이지 유신 이후 도쿄(간토)로 이전하면서 두 지역의 경쟁 의식이 심화됐습니다.

도쿄(간토) 사람들은 오사카(간사이) 사람을 “촌스럽고 시대에 뒤처진 장삿꾼”으로, 오사카 사람들은 도쿄인을 “도도하고 점잖은 척하는 새침떼기”로 폄하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음식, 언어(방언), 에스컬레이터에서 서는 방향(간토에서는 우리네와 반대, 간사이는 우리네와 같은 방향)까지 사소한 일상 차이도 상호 멸시나 놀림의 소재가 됩니다.

지역감정은 때때로 경제적 정책이나 대형 이벤트(올림픽, 엑스포 등) 홍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도쿄 올림픽과 오사카 엑스포 유치 과정에서 두 지역 도시 간 경쟁 및 상호 불신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지역민 간 갈등을 심화시키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오사카 엑스포 행사에 대해 도쿄 지역 일부는 “오사카가 돈벌이만 노린다”는 비난을 내놓고, 오사카 시민 일부는 도쿄의 지나친 무시를 토로합니다. 이런 상호 불신은 각종 정책적 협력이나 국민적 단합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결혼, 사교 등 사회관계에서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사례가 존재합니다. 예컨대 도호쿠와 야마구치, 그리고 간토와 간사이 출신 간 결혼 시 장벽, 한신(오사카)과 요미우리(도쿄) 프로야구 팬 간 격렬한 대립 등이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또, 일본 사회의 빈부격차나 인프라 투자에서도 간사이 지역이 중앙 정부의 우선 대상에서 소외됐다는 불만이 쌓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선 선거 때 지역감정이 노골적으로 표출되지만, 일본에선 상대적으로 정치 이슈로까지 표면화되는 일은 적습니다. 다만, 경제적 혜택이나 인프라 투자 배분에서 지역감정이 암묵적 변수로 작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본의 간사이-간토 지역감정은 오랜 역사와 문화적 차이, 경제적 이해관계, 일상 속 관습이나 농담, 언론 보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로 인한 사회적 폐해는 상대방에 대한 고정관념, 차별적 시선, 경제효과 저해, 정책 협력의 어려움 등으로 나타납니다. 다만, 한국처럼 정치적으로까지 극단적으로 이용되는 범위는 제한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같이 일했던 일본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사라지기 전까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 지역감정이다.” 이렇게 일본인 모두의 속마음에는 ‘지역감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한국인에게는 어떤 ‘지역감정’이 남아 있나요?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