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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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肌が合う(はだ が あう, 하다가다우; 피부가 맞닿다; Meeting of the Skins)

일본인과 서양인이 서로를 대할 때는, 세상을 바라보고 측정하는 근본적인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과제가 존재합니다. 일반적으로 일본인의 현실 인식은 아름다움, 조화,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 서양인의 현실 인식은 선과 악, 바람직함과 바람직하지 않음, 실용성과 가능성과 같이 보다 구체적인 요소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점차 이성적이고 실용적이며 원칙 중심인 서양식 사고방식에 적응해 가고 있으나, 그들의 태도와 행동 대부분은 여전히 전통문화의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이 전통문화는 서양과 상당히 달라, 일본과 세계 다른 나라 사이에 발생하는 많은 마찰과 오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제가 일본의 독특한 가치관과 관점을 접한 일화 중 하나는 2007년 도쿄에서 합자회사 설립을 위해 상대회사인 일본 스타트업 CEO와 인터뷰하던 때였습니다. 그 젊은 친구는 제게 합자회사 간의 조건에 대해서 실무적 의견을 묻지 않았습니다. 대신, 건물 로비에 있는 미니어처 정원에 깔린 개울 바닥 돌들이 따뜻하고 조화로운 느낌을 주는지를 물었습니다.

일본인의 전형적인 첫 반응은 감상적이거나 정서적입니다. 그 이후로 나아갈지는 여러 요소에 달려 있으며, 올바른 정서적 ‘버튼’이 올바른 순서로 눌리지 않으면 관계는 크게 발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이 냉철하고 실용적인 판단을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역사가 극적으로 보여주었듯이, 일본인은 실용적 사고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실용적 계획과 실행조차 개인적인 감정의 틀 안에서 이루어지고, 객관적 원칙은 그 다음입니다.

일본 문화의 정서적 측면을 구분하고 설명하는 핵심 단어 중 하나가 바로 ‘하다(はだ, 肌)’, 즉 ‘피부’입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뿐 아니라 인간관계와 일반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데에도 쓰입니다. 일본인은 전통적으로 ‘마음이 맞는 회합(meeting of the minds)’이 아니라 ‘피부가 맞닿는 회합(meeting of the skins)’이라는 표현을 써 왔습니다.

즉, 인간적인 감정을 충족시키는 만남, 합의, 관계가 먼저이고, 이념이나 사상은 부차적이거나 아예 고려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서양인의 객관적 관점에서는 비합리적이거나 비실용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합의도, 일본인에게는 양측의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주된 목표입니다.

대표적인 ‘피부’ 관련 표현 세 가지가 있습니다.

⊙ 하다 가 아우(はだがあう, 肌が合う) – 문자 그대로는 ‘피부가 맞닿는다’는 뜻이며, 구어체에서는 사람들끼리 잘 맞고 서로 호흡이 잘 맞아 팀워크를 이룰 수 있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 히토 하다 누구(ひとはだぬぐ, 一肌脱ぐ) – 문자 그대로는 ‘피부 한 겹을 벗다’라는 뜻으로, 누군가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하다 오 유루수(はだをゆるす, 肌を許す) – ‘자신의 피부를 사용하도록 허락하다’는 뜻으로, 누군가를 깊이 신뢰하여 ‘내 피부를 입도록 허락하는’ 정도로 마음을 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다(肌, はだ; 피부)’라는 단어가 이런 방식으로 쓰이는 것은, 일본인 관계 속에 매우 밀접하고 개인적인 친밀감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인은 사상보다 감정으로 더 강하게 연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피부의 만남’에 대한 필요성은 일본의 대면 회의와 비즈니스 관계의 핵심에 있으며, 외국 비즈니스인이 일본과의 관계를 원활히 유지하고자 한다면 일본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필요성 때문에, 일본에서는 1년 동안 수차례 비즈니스 파트너의 사무실을 비업무적인 이유로 방문하는 관습이 있습니다. 승진, 결혼 같은 경사를 축하하거나 가족상을 당했을 때 조문하고, 새해 인사로 지난 한 해의 비즈니스에 감사를 표하며 새해에도 협력을 부탁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피부 접촉’은 악수나 일부러 손·팔을 상대에게 대는 행위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대신, 일본 문화에서 ‘피부’란 함께 모여 식사하고, 술을 나누고, 함께 의제를 논의하며 그룹 차원에서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공유되는 감정을 뜻합니다.

당시 저 역시 COO로 재직 중이라 맡은 회사의 업무도 적지 않았고, 또 다른 회사와의 합자회사 설립과 월간 매거진 창간을 위해 눈코뜰새 없이 바빴습니다. 그러다보니 ‘肌が合う(はだ が あう, 하다 가 아우)’가 부족했습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肌が合わない”는 곧 “나와 다르다”, “이질적이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져 집단에서 배제의 명분이 되기도 합니다. 즉, 외모·패션·습관·성격 등이 다르거나 튀면, 사회적 시선이나 편견으로 인해 소외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독특한 복장이나 스타일을 추구하려고 해도 “주변과 달라서 안 된다”, “눈에 띄면 안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기표현이 어려워집니다.

“肌が合わない 사람”을 집단에서 따돌리는 경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는 학교, 회사 등 조직 내에서 이직·퇴사・따돌림(이지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문화, 외국인, 각종 소수자에 대한 진입 장벽이 높아지고,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심한 제한이 생깁니다.

외모 또는 피부에 대한 압박과 루키즘(lookism)이 작동합니다. “하얀 피부”, “깨끗한 외관” 등 특정한 외모 기준을 사회적으로 강요하며, 기준에 못 미치면 차별 혹은 자기비하·우울감이 생깁니다. 피부색이나 외모가 “집단 내 평균”과 달라지면, “肌が合わない(하다 가 아우나이)”로 낙인찍혀 자기효능감과 정체성에 악영향을 줍니다.

개인의 기호나 취향 맞춤 제품, 패션, 뷰티에 있어서도 “집단에 맞춰야 한다”는 압력이 작용합니다. 자신에게 진짜 맞는 선택이 아니라, 집단의 “무난함”에 휩쓸려 자율성이 약화됩니다. 화장품 광고 등에서도 “일본 여성의 피부에 맞춘”이라는 문구가 횡행하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일본인의 피부 타입이 같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획일적으로 접근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타인의 행동, 외양, 가치관이 자신과 다르다고 판단되면 “肌が合わない”라며 관계를 적극적으로 멀리하거나, 조직적·사회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타투(문신), 할리우드 패션 등 서구 문화에 대한 일본 사회의 보수적 반응에서도 드러나며, 외국문화 수용에도 높은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심각한 자기검열과 정신적 부담

“남들과 달라지면 배제당한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자기검열, 자존감 저하, 스트레스를 겪습니다. 심한 경우 이지메(왕따), 정신질환,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집니다.

결론

일본의 “肌が合う” 문화는 팀워크와 조화를 강조하며 긍정적 역할도 있지만, 집단의 획일성을 강제하고 다양성, 개성, 자율성을 억압하며, 외모와 행동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자기검열, 편견, 차별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특성은 일본 사회의 혁신성과 포용성을 저해하는 구조적인 문제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참고 사이트:
日本文化が海外で盗用されたら? 文化の盗用の本質を小川さやかさんに聞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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