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17일
8-13-1800

事情変更(ジジョ ヘンコ, じじょ へんこ, 지조헨코; 사정변경; The Only Constant is Change)

오랜 옛날부터 일본인들은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으며, 이런 상황에서 가장 좋은 삶의 철학은 ‘유연성’—즉, 바람에 맞춰 몸을 굽히는 능력—에 기초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오랜 개념은 지금까지도 일본 윤리와 도덕의 초석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면 서양인들은 세상을 고정된 것으로 보고, 관계나 인간 활동 또한 원칙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왔습니다. 이 서양과 일본의 관점 차이는 서양인들이 세세하고 엄격한 계약서 작성에 집착하는 성향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서양에서는 계약이 없다면 세상이 무너질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현대 이전까지 일본에는 상세한 계약서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정치적·사업적 목적의 동맹은 있었지만, 그것들은 우주처럼 개방적이며, 어느 쪽이든 날마다 조정이 가능했습니다. 일본의 모든 합의는 ‘事情変更(ジジョ ヘンコ, じじょ へんこ, 지조헨코)’, 즉 ‘상황 변화’ 원칙에 기반했으며, 계약의 조건은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고 이해되었습니다.

서양식 계약이 일본에 도입되었을 때, 일본인들은 이를 “서양인은 비윤리적이고 신의가 없어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증거로 여겼습니다. 또한, 변하지 않는 상세 계약에 얽매이는 것을 비합리적·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 어떤 상황도 그대로 유지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가 되어서야 대부분의 일본 기업은 외국 파트너와의 계약 서명에 익숙해졌지만, ‘事情変更(ジジョ ヘンコ, じじょ へんこ, 지조헨코)’ 개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계약을 구속력 있는 절대 조건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개정 가능한 ‘일반 가이드라인’으로 계속 해석했습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일본이 해외 비즈니스에 더 깊이 관여하게 되면서 국제 무대에서는 서양식 계약을 새롭게 평가하게 되었지만, 일본에서는 여전히 계약을 ‘조정 가능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합니다. 일본인들은 계약이나 구두 약속을 일방적으로 조정하거나 심지어 파기하기도 하며, 이를 부적절하거나 부당하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에게 불리한 계약 조항을 그대로 두는 것이야말로 비합리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서양인 입장에서 문제는 일본이 계약 변경을 사전에 협의하지 않고, 보통 사후에 통보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계약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재해석하는 것과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정직하고 신의 있는 민족이라고 여기는 이미지를 전혀 모순으로 보지 않습니다. 계약 조정은 인간관계의 문제이며, 인간적인 감정이 우선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약을 파기하는 쪽은 미래에 상대방이 같은 관용을 필요로 할 때 이를 허용해야 할 ‘빚’을 진다고 여깁니다. 결국 모든 것이 균형을 이루게 된다는, 매우 불교적인 발상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글로벌 비즈니스에 참여하게 되면서 ‘事情変更(ジジョ ヘンコ, じじょ へんこ, 지조헨코)’ 개념이 180도 돌변하게 됩니다. 아마도 1980년대 ‘코리안 타임(Korean Time)’으로 시간개념이 없던 우리가 초단위로 정확하게 바뀐 시간 관념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일본 법에서 ‘事情変更(사정변경의 원칙)’은 계약 체결 후 예측하지 못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해 계약의 이행이 현저히 불합리해지는 경우, 계약 내용을 수정하거나 해지를 인정하는 판례상의 원칙입니다. 지금 일본에서는 사정변경 원칙에 대해 아주 엄격한 태도를 취합니다. 판례가 요건 흠결을 이유로 실제 적용을 자주 부정하는데, 이는 사정변경 원칙이 실무에서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일본 판례는 계약의 신의칙을 강조하면서도 사정변경이 발생했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민법에도 명시적으로 규정되지 않고 있으며, 2011년까지도 입법화되지 않은 학설 및 판례에 불과했습니다.

일본의 사정변경 제도는 계약의 안정성과 신의칙을 우선시함으로써,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변화에도 계약 해지나 변경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계약자 특히 약자의 보호가 약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사회적으로 예측불허의 변화(천재지변, 급격한 경제위기 등)가 발생해도 계약의 본래적 구속력이 유지되어, 손해를 불가피하게 떠안게 됩니다. 소위 인정사정 없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사정변경 인정에 극도로 소극적이기 때문에, 경기 불황이나 사회적 격변 등으로 인해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내몰려도 구조적 구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시장 실패, 불공정 계약 등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일본 계약법의 폐해로 지적됩니다.

프랑스, 독일 등 민법에는 계약의 사정변경(불가항력)에 대한 명시 규정이 있어 실무상 구제가 쉬운 반면, 일본은 판례·학설만으로 인정되고 있으므로 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점진적으로 사정변경 원칙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나, 일본의 경직된 운용은 비교 대상이 됩니다.

일본의 ”事情変更(ジジョ ヘンコ, じじょ へんこ, 지조헨코)’ 원칙은 계약의 안정성을 강조하고, 실제 적용에 매우 소극적이어서, 예측 불가능한 변화에 따른 계약자 보호가 취약하고 사회적 불균형 문제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실질적인 분쟁구제나 법적 안정을 위해 명문화·실용화가 필요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2008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일본과의 합자회사 설립이 한창 진행될 때, 이러한 ‘事情変更(ジジョ ヘンコ, じじょ へんこ, 지조헨코)’을 고집하는 일본 비즈니스맨들을 두고 일을 계속하자는 것인지 속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했던 당시 상황이 새삼 가슴 쓰리게 합니다.

 

참고문헌:
국제 계약 중 사정변경의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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