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인의 3,000년 역사에서 통일과 분열의 순환은 이슬람 이전부터 이어져 온 깊은 부족 분열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아랍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적 이중성으로 인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순환은 단순히 정치적 사건의 반복이 아니라, 아랍 문명 내부에 내재된 사회적·언어적 모순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됩니다.
I. 통일과 분열을 내포한 사회 구조의 이중성
아랍 사회의 분열 구조는 그들의 언어와 사유 체계에 이미 각인되어 있습니다.
‘샤브(Shaʿb)’와 ‘카빌라(Qabilah)’는 이러한 이중성을 대표하는 개념입니다. ‘샤브’는 본래 ‘집합, 연합(Collection, union)’을 뜻하지만 동시에 ‘분리, 분열(separation, division)’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머리뼈 구조에 비유됩니다. ‘샤브’가 두개골의 봉합선(cranial suture)을 뜻한다는 점에서, 뼈는 만남과 분리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즉, 인간 존재 자체가 연합의 잠재력과 분열의 구조를 함께 내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정착민(hadar)과 유목민(badw)의 관계 역시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아랍 역사는 정착된 정치 사회(hadari)와 비정치적 유목 사회(badawi) 간의 지속적인 ‘대화’의 역사였습니다. 정착 사회는 질서와 문명을 상징하는 반면, 유목 사회는 약탈(ghazw)과 이동을 제도화한 역동적 체계였습니다.
꾸란의 언어 또한 이러한 양면성을 보여줍니다. 꾸란에서 인류를 ‘민족들(shaʿb)’과 ‘부족들(qabilah)’로 나눈 목적은 “서로 알게 하려 함(li-taʿārafū)”이라 하였지만, 이 구절은 ‘서로 알아가다’라는 의미와 함께 ‘서로를 구별하다’라는 분리의 의미도 함께 내포합니다. 즉, 단결의 이상과 분열의 가능성이 본질적으로 공존하는 것입니다.
II. 이슬람 이전 부족 분열의 역사적 현실
이슬람 이전의 시대, 즉 자힐리야(Jāhiliyyah)는 이러한 구조적 분열이 제어되지 않고 폭발적으로 드러난 시기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알 바수스의 전쟁(War of al-Basus)’입니다. 낙타의 유방에 화살을 쏜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된 복수의 연쇄는 40년 이상 이어졌고, 이는 ‘영구적인 분열(perennial disunity)’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유목 사회의 기본 제도인 약탈(ghazw)은 문화적·경제적으로 정착된 관습이었습니다. 11세기 아랍 통치자조차 재물을 빼앗는 행위를 “아랍의 확립된 풍습(established customs of the ’arab)”이라 표현했으며, 도시민의 생명과 재산은 종종 무시되었습니다. 이는 약탈이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이었음을 보여줍니다.
III. 통일과 분열의 순환 고리
예언자 무함마드는 정착 사회와 유목 사회의 요소를 결합하여 이슬람 공동체를 창설함으로써, 오랜 부족 분열을 일시적으로 봉합했습니다. 그러나 그 통일은 영속적이지 못했습니다.
이후의 역사에서 부족주의는 반복적으로 재등장하였고, 정치적 통일은 언제나 균열의 위기를 내포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아랍의 봄(Arab Spring)’과 같은 민주적 혁명조차 이러한 구조적 긴장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정착된 사회 질서에 대한 유목적 사고의 재등장은 예멘 내전 등에서 뚜렷이 드러나며, 고대의 분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영원히 현존하는 과거(ever-present past)’로 남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역사학자 이븐 할둔은 이러한 순환을 명확히 인식했습니다. 그는 “문명은 베두인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항상 붕괴했다”고 기록했습니다. 그의 통찰은 이슬람 이전부터 이어진 부족적 분열의 힘이 정치적 통일과 문명 건설을 끊임없이 위협해 왔음을 시사합니다.
결론적으로, 아랍 역사의 통일과 분열의 순환은 언어적·사회적 이중성 속에서 탄생한 구조적 현상입니다. 정착 사회와 유목 사회의 긴장, 연합과 분열의 양극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반복되며, 오늘날에도 아랍인의 정체성과 문명적 운명을 규정하는 근본적 요소로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