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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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국가에서는 삶의 마지막을 예산 삭감 압박 속에서 고비용 환자들을 줄이고자 하는 동기를 강화하는 정책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의사에게 조기 사망을 요청할 권리를 갖는 것은, 우리 대부분에게는 자율성과 연민이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럴듯하고, 논리적이며, 동정심 어린 선택으로 여겨지지요.

하지만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일부 국가에서 합법화된 ‘조력 마지막 결정(assisted suicide)’은, 자율성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전혀 다른 목적을 띤 정책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2002년, 네덜란드는 자국의 보편적 건강보험 체계 하에서 ‘조력 마지막 결정’을 허용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2023년 한 해 동안 9,958명의 네덜란드인이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이는 ‘조력 마지막 결정’을 제외한 전체 사망자 수의 약 5%를 차지합니다. 이 중 한 명은 29세의 조라야르 베크(Zoraya ter Beek)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신체적인 질환이 아닌 불안,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및 해리성 인격장애 진단으로 인해 삶을 포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캐나다는 2016년 의료적 조력조력 마지막 결정 제도(MAID, Medical Assistance in Dying)를 성인에게 합법화하였고, 처음에는 자연적으로 임종이 가까운 중증 불치병 환자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이 요건은 삭제되었고, 이제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도 조력자살을 택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가장 빈곤하고 절망적인 사람들—삶을 계속 유지하고 싶어도 의료 지원이 충분치 않은 이들—이 ‘조력 마지막 결정’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49세의 로저 폴리(Roger Foley) 씨는 희귀 신경퇴행성 질환을 앓고 있었고, 2020년 캐나다 의회에 출석하여 증언하기를, 자택 지원 서비스 병원 측이 자신에게 ‘조력 마지막 결정’을 강요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필요한 지원 없이 퇴원하면 하루에 1,800달러(약 247만 원)의 요금을 부과하겠다고 협박했다”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2022년에 상업광고에 등장했던 37세의 제니퍼 해치(Jennifer Hatch) 씨가 있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결정’ 직전 광고에 출연해, 마치 이 제도가 존엄한 선택인 것처럼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생을 포기하기 전 의료 접근이 불가능했던 상황을 친구에게 고백했습니다.

“국가는 한편으로는 삶의 마지막을 지원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규제하는 기관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정책적 모순이 존재합니다. 국가가 ‘조력 마지막 결정’의 문을 열어두는 동시에, 의료비 지출을 줄이기 위한 전략으로서 그것을 활용하는 구조 말입니다. 겉보기엔 자율성과 동정심을 앞세운 조치 같지만,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마치 비용 절감 수단처럼 기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미국의 의료체계는 사유화되어 있어 이러한 제도 도입이 상대적으로 어려울 수 있으나, 이 제도가 확산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은, 연금과 의료가 국가의 책임인 국가일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예산 삭감 압박 속에서 고비용 환자들을 줄이고자 하는 동기를 강화하게 됩니다.

정부들도 이를 인식하고 있는 듯합니다. 영국 재무부에서 일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는 ‘조력 마지막 결정’이 인도적인 관점에서는 아니라는 거야. 그건 분명히 젊고 건강한 사람들보다는, 지출이 많은 노인들에게 적용되는 거지.”

실제로 2017년 연구에서는 MAID가 시행될 경우 캐나다 의료비를 약 3억4,700만 달러(약 4,762억 원)에서 13억8,000만 달러(약 1조 8,935억 원)까지 절감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국 정부 산하 경제기관인 국가재정연구소 역시 ‘조력 마지막 결정’ 제도 도입 시 훈련 비용과 장비 투자 대비 “현저한 비용 절감 효과가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2023년, 영국 채널 제도의 자치령 건지섬(Guernsey)에서는 자살을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도 허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습니다. 벨기에 최대 건강보험사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의료 인력 부족 시대를 대비해 ‘조력 마지막 결정’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 견해는 단호합니다. ‘조력 마지막 결정’은 합법화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떤 모델이 가장 적절할까요? 저는 스위스 모델을 지지합니다. 스위스는 국가가 아닌 비영리 민간단체가 ‘조력 마지막 결정’을 운영하며, 정부의 재정과는 완전히 독립되어 있습니다. 즉, ‘삶의 마지막’이라는 선택이 예산 절감을 위한 유인책으로 작용할 수 없도록 원천 차단한 구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장 취약한 이들이 관료주의적 시스템 속에서 가장 먼저 밀려날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2006』을 떠올려보십시오. 이 영화는 미래의 대량 ‘마지막 결정’ 프로그램인 ‘퀴에타스(Quietus)’를 묘사합니다. 퀴에타스는 강요받지 않는 ‘마지막 결정’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국가가 은근히 유도하는 정책이었지요. 내부 고발자는 정부가 퀴에타스에 반대한 노인에게 “정부 절차를 통해 반려되었다”는 형식적인 거절만을 전달하고, 결국 ‘삶의 마지막’을 택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고 고발합니다.

“모든 안전장치가 있다”고요?
“오히려 그 안전장치야말로 문제입니다.”

‘삶의 마지막’, 권리가 의무로 변할 수 있나? ‘삶의 마지막’이 권리에서 의무로 변해서는 안됩니다.

– 본 칼럼에 쓰인 ‘삶의 마지막’, ‘조력 마지막 결정’과 ‘마지막 결정’이라는 용어는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2024년 11월 7일 개정된 보도지침 4.0에 따라 용어를 순화해서 적용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출처: 한국기자협회(https://www.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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