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2일
김형래_16X9_20150519_095837071_iOS_800

2015년 5월 19일, 서울대학교 최고위과정에서 '연령경영'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

역사는 종종 오해와 오역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작은 실수나 잘못된 의사소통이 큰 사건으로 이어진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일본인이 국제 정치 분야에서 겪는 문제는 언어의 오해나 오역으로 인해 발생한다는 주장에 자주 인용되는 ‘모쿠사츠 (黙殺, もくさつ, 묵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때는 제2차 세계대전 말기 포츠담 회담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포츠담 회담(Potsdam Conference)은 1945년 7월 17일부터 8월 2일까지 독일 포츠담에 있는 빌헬름 폰 프로이센 황태자의 집이었던 체칠리엔호프 궁(Schloss Cecilienhof)에서 개최된 회담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5월 8일에 항복한 나치 독일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를 논의했습니다. 그 외에도 전후 질서, 평화 조약, 전쟁의 영향에 대한 대응 등의 주제도 논의된 자리입니다.

1945년 7월 26일 트루먼 대통령과 처칠 영국 총리,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 주석 등 연합국 수뇌들은 포츠담선언(Potsdam Declaration)을 통해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냅니다.

연합국 지도자들은 이 선언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일본군의 ‘무조건 항복’ (unconditional surrender)과 ‘즉각적이고도 완전한 파멸’(prompt and utter destruction)중 양자택일을 요구했습니다. 이러한 최후통첩(ultimatum)은 일본 정부에 즉각적으로 공식 전달된 것이 아니라 국영 도메이 통신(同盟 通信, Domei News Agency)의 보도를 통해 일본 국내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포츠담 선언내용이 도메이 통신에 입수된 시각은 27일 오전 4시 30분이었고, 즉시 보도가 이뤄졌습니다.

외무성 주도의 일본 내각은 최후통첩을 수락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외무성 간부들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기로 한 것은 무엇보다도 그 속에 국왕의 전쟁책임 문제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포츠담 선언 초안을 작성한 사람은 개전 때까지 주일대사를 역임한 조지프 그류(Joseph Grew) 미 국무장관 대리로, 그는 특별히 일본 국민들에게 가혹한 내용을 담지 않았습니다. 충분히 수락할 수 있는 내용을 포츠담 선언에 담았으며, 도고 시게노리(東鄕武德) 외상은 그류 국무장관 대리의 이러한 의도를 이해했습니다. 도고 외상은 포츠담 선언의 수용만이 전쟁을 종결시키는 길이라고 주장하면서 소련의 중재에 의해 조건들을 완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왕 역시 연합국 측의 요구를 수락하기 위해 내각의 지지를 얻고자 했습니다. 협상(協商)을 통한 강화(講和)를 원하던 히로히토(裕仁, 1901-1989) 일왕은 소련을 통해 ‘무조건 항복’이란 어구 중 ‘무조건’이란 말의 삭제를 요구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미국에 의해 거절됐습니다. 그러자 일본 내각은 연합국 측에서 공식 통보가 올 때까지는 시간을 끌면서 외교적인 노력의 협상 여지를 남겨두면서 일절 논평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해놓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합국 측의 항복 요구가 이미 언론에 대서특필된 가운데 정부의 입장을 밝히라는 언론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히 군부의 주전론자들은 내각에 대해 ‘전쟁 계속 의지 천명’ 등 강경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압력을 넣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당시 77세의 스즈키 칸타로(鈴木貫太郞) 총리는 7월 28일 오후 4시 기자회견을 갖습니다. 하지만 일종의 모호한 단어로 의견이 전달됩니다. “우리는 포츠담 선언에 대해 ‘모쿠사츠’(黙殺, もくさつ, mokusatsu)할 따름이다.”라면서 ‘모쿠사츠’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모쿠사츠라는 말은 영어나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서구 언어로 그 뜻을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상당어’가 없으며 심지어 일본어에서조차도 모호한 표현을 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모쿠사츠’는 그 어원이 ‘silence’의 의미를 갖는 ‘moku’(黙)와 ‘kill’의 의미를 갖는 ‘satsu’(殺)의 합성어이며, 축어적으로는 ‘黙殺’(묵살)로 표기됩니다. 영어로는 ‘the act of keeping a contemptuous silence’(동사로는 ‘to kill with silence’)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이러한 ‘모쿠사츠’에는 크게 ①무시하다(to ignore/not to pay attention to, ignore) 와 ②논평(언급)을 유보하다(to refrain from any comment/to withhold comment, no comment)라는 두 가지 뜻이 혼재한다고 합니다. 보통 사전에 보면 1. 이런 뜻, 2. 저런 뜻으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입니다.

당시 국내 보도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포츠담선언 내용을 파악한 스즈키 총리는 포츠담선언이 앞서 1943년 발표된 카이로 선언의 재탕 성격을 갖고 있는 데다 문구가 부드럽고 일왕의 전쟁책임이나 왕실 존폐문제에 언급이 없는 점을 들어 협상의 여지가 있다며 ‘공식 채널을 통해 선언문을 정식으로 입수할 때까지는 기자회견에서도 논평을 유보하자’는 각의의 견해를 반영할 예정이었으나 두 가지 의미가 있는 ‘모쿠사츠’라는 애매한 용어를 써버리고 만 것입니다.

스즈키 총리의 기자회견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시 일본의 대외 선전매체의 역할을 하던 도메이 통신의 하세가와 사이지(長谷川 才次) 기자는 영문기사에서 ‘모쿠사츠’를 사전의 ②번 뜻 ‘언급(논평)을 삼간다’(no comment)대신, 사전의 ①번 뜻인 ‘무시한다’(ignore)쪽으로 보도했습니다.

도메이 통신 기사를 인용한 ‘라디오 도쿄’의 영어 방송도 ‘무시한다’로 보도했습니다. 도메이 통신의 기사는 AP, 로이터 등 주요 뉴스통신사들에 의해 즉각 전 세계로 타전되었습니다. 스즈키 총리의 모쿠사츠 발언에 충격을 받은 도고 외상은 소련과의 교섭에 희망을 걸었지만, 소득 없이 끝났습니다.

7월 30일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일본, 연합국의 항복 촉구 최후통첩을 공식 거부하다'(Japan Officially Turns down Allied Surrender Ultimatum)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일본의 스즈키 총리는 일본 제국 정부에 관한 한 포츠담 선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미국, 영국, 중국의 대일 항복 최후통첩에 대해서 공식 거부 의사를 밝혔다'(Premier Kantaro Suzuki of Japan has put the official Japanese stamp of rejection on the surrender ultimatum issued to Japan by the United States, Great Britain and China, declaring that “so far as the Imperial Government of Japan is concerned it will take no notice of this proclamation.’)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앞서 7월 27일 AP통신은 도메이 통신의 사전 추측성 기사를 인용, ‘연합국 측의 최후통첩이 무시될 것'(the allied ultimatum would be ignored)이라고 보도했으며, AP통신의 이 기사는 28일 자 뉴욕타임스에 그대로 실렸습니다. 영국의 더 타임스도 같은 날 ‘일본이 연합국 측의 최후통첩을 무시할 것'(would ignore the ultimatum)라고 전했습니다. 영국의 BBC는 29일 ‘일본이 연합국의 최후통첩을 거부했다'(Japan formally rejected the Allied ultimatum)고 보도함으로써 최초로 ‘거부’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같은 날 프랑스의 르 몽드지도 도쿄발 기사에서 ‘일본 총리 최후통첩 거부’라는 표제를 달았습니다.

이처럼 도메이 통신의 ‘무시하다’(ignore)라는 표현이 시간이 흐르면서 서방 언론에 ‘거부하다’(reject)로 바뀐 것입니다. 격분한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무조건 항복’ 요구를 거부한다는 답변에 경악했고, 이를 ‘전형적인 반자이 정신'(万歳の精神, ばんざいのせいしん)과 ‘가미카제 정신'(神風精神, かみかぜせいしん)의 예로 보고 사흘 뒤인 8월 3일 원폭 투하를 지시하는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미국은 결국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습니다.

이러한 오해로 약 7만 명이 즉시 사망하고 추가로 10만 명 이상이 파괴와 방사능 탓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시 총리 스즈키 간타로에 대한 두 번의 암살 시도, 천황에 대한 군사 쿠데타 시도, 소련의 선전포고가 있고 난 뒤에야 천황이 직접 포츠담 선언의 조건을 수락하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끌어냈고, 이로써 태평양 전쟁이 종식되었습니다.

물론 미국의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2차 대전의 조기 종식과 전후 국제질서의 재편을 위한 미국의 세계 전략적 차원에서 단행된 계획적인 것이었지, 단순히 일본 언론의 오역 보도 때문이었겠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사건 전개 과정의 인과관계로 보면 ‘오역’이 핵폭탄 투하를 부른 게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 사건은 정확한 번역과 문화적 맥락을 고려한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 되었습니다.

OECD가 2024년 12월 10일 발표한 ‘성인 기술 조사 2023: 한국(Survey of Adults skills 2023: Korea)’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중장년 문해력이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의 중장년(55~65세)층은 문해력, 산수 능력, 적응형 문제 해결 능력에서 23~34세보다 낮은 능력을 보였고, 문해력에서는 25~34세보다 55점 낮았습니다. 심지어 OECD 평균에 비해서 30점이 낮았습니다. 성인의 31%가 1단계 이하를 기록했는데, 이는 정보가 명확하게 표시된 경우 짧은 문장과 정리된 목록을 이용하고, 1단계 미만은 기껏해야 짧고 간단한 문장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장년 세대’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세대로 세상 자랑이 끊이지 않던 집단입니다. 그들이 2024년 현재에 와서 보니 문해력, 산수 능력, 적응형 문제 해결 능력에서 모두 뒤떨어지는 그야말로 사회 생존에 부진한 능력의 소유자가 된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말이 막힙니다. 말이 되질 않습니다. 더구나 높아진 목청으로 실수할까 두려워집니다.

알고리즘이라는 조미료에 편향된 유튜브 시청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인지? 책이라곤 제목 이상을 읽어보지 않은 게으른 지적 활동을 자랑하는 것은 아닌지? 체력은 국력이라고, 오로지 체력만 키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편식 된 생활에만 집착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젊은 시절 그 많은 공부로 세운 기적, 종이 사전을 뜯어먹으며 뜻 ①, ②, ③, ④를 내리 꿰던 그 학습 능력은 도대체 어디 간 것입니까?

OECD의 조사 결과를 무시하더라도, 가뜩이나 ‘오해’와 ‘오역’이 넘쳐나는 이 시절, 지혜와 경험의 바른 지식과 해석으로 시대적 어른의 자리를 맡아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의 중장년이시어, 학창 시절 4당5락의 패기 넘치는 학습량을 바탕으로 세계를 이끌고 호령하셨으니, 이제 가벼운 복습만 수반되어도 ‘오역’과 ‘오해’ 그리고 ‘떨어진 자존심’의 강을 쉽게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 학습을 통해 다시 지혜의 선배가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떨어진 여러분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길은 책을 들고 공부하는 방법밖엔 없습니다. 복습만이 지름길입니다. 공부 더 합시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