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8월 02일
김형래_16X9_Henry_KUNPO2_800

“새해에는 갈색이 패션에서 유행할 것입니다.”, “내년에 유망한 주식 투자 종목군은 바이오와 건설업종입니다.”, “2025년 **** 트렌드, 이것만은 꼭 기억하세요.”

자칭 전문가로 불려주기를 원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예측을 쏟아냅니다. 특히 연말연시가 되면 토정비결을 시작으로 최근 들어서는 타로까지 거들어 온갖 미래를 다각적으로 예측 전개합니다.

그 예측들은 얼마나 믿을 만할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예측의 진가를 검토해 보려고 애쓴 사람은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냥 그때 그렇게 예측했었지, 정도를 기억하는 것만 하더라도 대단한 관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심리학자 테들록이 등장합니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대학교 교수인 필립 E. 테들록(Phillip E. Tedlock)은 284명의 전문가가 쏟아낸 83,361건에 달하는 예측들에 대해서 10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그 진위를 확인해 보았습니다. 이것을 정리하여 2016년에 《슈퍼예측(Superforecasting)》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합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의 20년 동안 테들록 교수는 다양한 전문가, 예측가에게 경제 성장에서 리더십 교체에 이르기까지 국가 또는 세계 무대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정 사건의 확률을 추정하도록 요청한 다음 30,000개 이상의 예측을 실제 결과와 비교했습니다. 태틀럭 교수는 책의 내용 중 〈전문 예측가와 침팬지, The Forecaster and the Dart-Throwing Chimp)〉이라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제 연구에 따르면 평균적인 전문가는 제가 제기한 많은 정치적, 경제적 문제에 대해 추측하는 것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1년밖에 안 되는 가장 짧은 범위의 질문에 대해서는 우연을 이기는 것이 가장 쉬웠고, 전문가들이 더 멀리 예측하려고 할수록 정확도가 떨어졌습니다. 3~5년 후에 다트를 던지는 침팬지 수준에 접근했습니다. 그것은 중요한 발견이었습니다. 그것은 복잡한 세상에서 전문성의 한계와 슈퍼 예측가조차도 달성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 무언가를 말해줍니다.” 전문가들이 침팬지보다 간신히 더 높은 점수를 받았을 뿐이라니 얼마나 허망한 결과인지 상상이 갑니다.

전문가가 유명할수록 그 전문가의 예측 성과는 더 나빴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이 전문가를 원할 때, 그들은 그 사람의 과거 정확성 기록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잘 알려져 있고 언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즉, 지혜를 연마하는 것보다 브랜드를 연마하는 데 시간을 보낸 사람을 의미합니다. 미디어는 또한 그럴싸한 배경지식과 용어를 써가면서 과거의 사례와 비교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전달하는 전문가를 선호합니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청중에게 집중하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보고서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행동이 어눌한 침팬지가 다트를 던져 과녁을 맞추는 것과 예측 전문가의 예측 적중률을 비교할 때,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밝힌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명성 있고 대단한 경력을 가진 전문가들의 예측들이 아무렇게나 즉흥적으로 숫자를 댔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거의 맞는 게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증권시장이 침체하거나 하락세를 보일 때면 객장 고객들은 ‘차라리 주식시세 전광판에 껌을 던져 종목을 고르는 게 낫겠다’며 증권 브로커를 조롱하기도 합니다. 사실은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두고도 잘 안다고 믿는 심리적인 요인은 무엇일까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2025년에는 원ㆍ달러 환율이 얼마까지 갈 것인지? 종합주가지수가 어느 선에서 움직일 것인지? 유망 종목군은 어떤 부류인지? 뻔히 맞는지 확인도 하지 않을 미래라 겉으로는 참고할 뿐이라지만 속으로는 굳게 믿는 일종의 ‘예지(豫知)에 대한 환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젤란 펀드를 13년간 운영하면서 연평균 29.2%라는 놀라운 투자수익을 올려 큰 인기를 얻었던 피터 린치도 “미국에는 6만 명의 경제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경제 위기와 금리에 대해서 예측하라고 고용되었습니다. 만약 그들의 예측이 단 두 번이라도 연속해서 맞았다면 그들은 백만장자가 되었을 것입니다.”라면서 예측이란 것이 전문성, 훈련, 지적 수준 등과는 관련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전 세계 경제계에서 영적 스승으로 불리던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교수가 “예측하라니 했을 뿐, 결과를 맞추는 것과는 별개의 일이다”라면서 ‘예측과 결과가 다름에 대한 회피성 발언’이 위안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제는 전문가들이 잘못된 예측을 하더라도 그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돈이든 평판이든 그 무엇도 잃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측이라는 시도를 했던 용기 때문인지 특혜를 받게 됩니다. 예측이 빗나가더라도 ‘명성의 하락’은 없지만, 어쩌다 예측이 맞으면 ‘명성의 상승’은 당연시됩니다. 이 방송 저 신문에서 인터뷰가 줄을 잇고, 자문 위탁이 늘어나고, 저서 출판할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이렇게 잘못된 예측의 대가가 ‘영(0, zero)’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야말로 ‘예측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예측이 생겨나고 순전히 우연이라는 확률도 더 커지고 있습니다.

무엇을 예측할 수 있고, 무엇이 예측 불가능할까요? 1년 후의 자신의 몸무게를 예측하는 일이라면 크게 빗나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수가 많을수록, 장기적인 내용일수록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해집니다. 그래서 더욱 비판적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피터 린치의 명언이 있습니다. “주식 투자를 하려면, 최소한 냉장고를 고를 때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라.” 우리는 과거를 기록하고 오늘을 살며 미래를 희망합니다. 전문가들의 예측, 예견, 관망을 무조건 따르기 보다는 그 배경에 대한 이해와 현재의 파악을 면밀히 하는 순수한 나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책꽂이에서 대니얼 알트만이 쓴 《10년 후의 미래 (Outrageous Futures)》라는 제목의 책을 꺼내 보았습니다. 2011년에 발간된 책입니다. 그가 당시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상에 주목을 받았던 충격적인 미래가 담겨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12가지가 10년 뒤에는 크게 세상을 뒤바꿀 것이라는 예측을 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예견하는 12가지의 10년이 지난 2024년에는 어떤 것이 실현되었는지 제 나름대로 검증했습니다. 100%에 가깝게 적중한 것은 바로 ‘중국의 미래’였습니다. 그의 예측 당시 금융회사인 ‘골드만 삭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보았기에 관심을 끌기도 했던 부분입니다. 검증 결과 중국이 세계 패권을 잡을 것이라는 ‘골드만 삭스’는 틀렸고, 중국이 침체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대니엘 알트만은 맞았습니다. 골드만 삭스가 간과한 것이 바로 ‘인구’입니다.

1979년 중국이 계획생육정책(计划生育政策)을 펼쳤습니다. ‘한 자녀 정책’이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사상 최대 규모의 인구 조절 정책입니다. 이 정책은 ‘인구 4억 명 억제 성과’를 낳고 35년 만인 2016년 1월 1일 기점으로 ‘두 자녀 정책’이 시행되었습니다. 마오쩌둥의 출산 장려 정책으로 1949년 5억 명이던 중국의 인구는 1976년 9억 4천만 명으로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해서 만들어낸 정책입니다.

아무튼 출산율 저하에 따른 생산가능인구의 상대적 감소와 고령인구의 증가세가 내수 침체를 시작으로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알트만의 예측은 맞았습니다.

‘인구’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지표라는 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경제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ker)도 “인구 통계의 변화야말로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2024년 12월 24일(수) 조간신문은 일제히 1면에 행정안전부의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인용하면서 ‘대한민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일제히 보도했습니다. 초고령사회가 되면 ‘연금 고갈 시기’가 당겨지고 복지ㆍ의료 비용이 증가하면서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지고,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고 소비가 위축돼 국가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질 우려도 있다고 한목소리를 냈습니다.

그 뒤에 정부는 고령화, 저출산 등 인구문제를 총괄할 콘트롤타워로 부총리급인 ‘인구전략기획부’를 출범하려 했으나… 동력을 잃었다고 후술하고 있습니다. 저출산 및 인구 고령화가 마치 올가을부터 시작된 문제인 양 느긋하게 ‘탓’하는 학자나 관료들을 마주하게 되면 대안없는 비판 속에 무한반복의 당파싸움에 휘말리는 것과 같은 우려를 낳습니다.

저는 그중에 한 가지 비판과 그에 대안을 제시해 볼까 합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어 경제활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예견됩니다. 그중에서도 대기업이 혁신을 외치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해괴한 정책 하나를 언급하고자 합니다. 바로 ‘정년’이라는 것입니다. “정년을 없애라”라는 대안을 제시해 봅니다. 근로자에게 ‘정년’이란 군대에서 제대와 같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며칠 후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계산처럼 정년은 그 직장에서의 집중도를 낮춤과 동시에 또 다른 직장으로의 이직을 자연스럽게 꿈꾸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 어렵다는 ‘삼성 고시’는 실력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한 제도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인재가 회사를 떠나는 것은 ‘실력’이 아닌 정년이라는 ‘나이’로 떠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실력’으로 들어온 사람이 ‘실력’이 있음에도 ‘나이’가 차면 그 회사를 떠나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정년’이 이직 사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도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강제 퇴직 조항이 된 것입니다. 5년 연장하나, 10년 연장하나 큰 차이가 없음에도 관료와 학자들은 논쟁이 길어질수록 책임을 회피할 구실이 되니, 티격태격하면서 또 시간을 소모할 것이 뻔해 보입니다. 그러니 아예 ‘정년’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2024년 6월 모 경제신문은 2031년 국내 반도체 인력 필요 규모는 30만 4천 명으로 2021년 기준 17만 7천 명이고, 매년 학교에서 배출되는 산업 인력은 5천 명 이하 수준이라고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예상합니다. 무려 5만 4천 명이 부족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기사가 연이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붐으로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던 같은 시기, 전 세계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는 채용 플랫폼 링크트인(Linkedin)에 따르면 엔비디아 임직원 중 삼성전자 출신이 515명 가입돼 있고, 삼성전자 임직원 중 엔비디아 출신은 278명으로 집계되었다고 합니다. 미국 마이크론으로 이직한 SK하이닉스 직원은 111명, 마이크론에서 SK하이닉스로 이직한 직원은 8명에 불과한 것으로, SK하이닉스 임직원 중 엔비디아 출신은 38명인데 반해 엔비디아 출신 SK하이닉스 직원은 0명으로 나타났습니다. 링크트인에 가입하지 않은 분들도 있으니 그 숫자는 더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참고로 엔비디아나 마이크론이 있는 미국에서는 연령차별금지법(ADEA, Age Discrimination in Employment Act)에 따라 고용 과정에서의 연령차별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40세 이상의 근로자를 보호하며, 나이를 이유로 한 고용 차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1986년 미국은 정년제를 완전히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에 따라 은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정해져 있지만, 이는 강제 퇴직 연령이 아니라, 오히려 근로자들이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영국도 2010년 평등법(Equality Act)을 계기로 정년제를 폐지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4월 6일부터 영국에서는 기본 정년 연령(Default Retirement Act)이 폐지되었습니다. 근로자들은 자신이 준비되었을 때 퇴직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낯선 기업문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음에도 ‘우리나라 실력 있는 인재들이 떠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심각한 순유출이 숫자로 증명되는데, 급여나 복리후생 같은 단어를 떠올리며 변명 같은 방어책 준비를 거두시고, 이번 기회에 정년제를 폐지합시다.

1912년 4월 14일, 타이태닉호가 빙산과 충돌하면서 1,5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은 비극 이전에 ‘떠도는 해빙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를 여섯 번이나 무시했다’는 교훈을 기억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번 행정자치부의 인구통계 발표는 이미 충돌을 피할 수 없는 여섯 번째 경고가 아니기를 바란다면,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조치가 단 하나라도 나오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이건희 회장의 말씀에 ‘정년제도’는 왜 빠져있었는지 묻습니다. 그래서 미약하나마 눈앞에 보이는 대안 하나를 제안해 봅니다. 정년제를 폐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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