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TN 24에 출연해서 방송하던 장면
시골에는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건재하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공동체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 살아갑니다. 마을과 개인 사이에는 집이 있고, 개인은 특정 집안의 구성원으로 살아갑니다. 집 또한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고 친척이나 이웃집과 관계를 맺으며, 때로는 서로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공동체나 친족, 지역에 따른 연고 그리고 집이라는 형태로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 얽매여 있는 개인은 자기 의사에 따라 행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시골은 말 그대로 유연(有緣)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도시로 나온 사람들 역시 집을 소유합니다. 그러나 도시에서 말하는 집과 시골에서 말하는 집은 다릅니다. 도시는 친족과의 관계나 지역과의 연결이 약하고 다수의 집을 묶어주는 마을 공동체가 애초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도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핵가족 형태는 단순히 가족구성원이 적을 뿐 아니라, 무슨 일을 하던 주변의 눈치를 봐야 할 일이 없고 관심을 두지도 않습니다. 도시에서의 이런 생활은 자유롭고 구속이나 속박이 적어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눌리거나 얽매이지 않아 평편해 보이까지 합니다.
고도성장기에 지방에서 도시로 상경한 농촌의 차남, 삼남이 도시 생활에 동경을 품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속권이 없는 그들은 농촌에 남는다 해도 삶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없었기 때문에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습니다.
동화 《백설 공주》에 나오는 백마를 탄 왕자님도 분명 상속권 있는 장자가 아니기에 궁궐을 떠나 숲 속을 헤매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궁궐이라는 유연 사회가 싫어서 숲속이라는 무연(無緣) 사회로 떠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무연은 원인과 조건 없이 평등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연의 숲 속이기에 신분을 따지지 않고 백마 탄 왕자와 백설 공주가 맺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요?
지난 수십 년간 유연 사회인 시골에서 무연사회인 도시로의 이동은 유행처럼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무연은 속박에서 해방한다는 의미이고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기본조건이기도 했습니다. 지방에서 도시로 상경하면서 사람들은 연고를 시골에 두고 온 무연이 되었습니다.
무연이 된다는 것은 속박과 굴레에서 해방됨과 동시에 고독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상경은 개인적인 행위입니다. 설령 시골 동네 친구들이 함께 상경을 한다고 하더라도 똑같은 직장에서 일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혼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물론 도시에서 유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경조사 정도를 챙겨주는 유연의 직장이 있기는 하지만, 떠나는 순간 그마저 아주 쉽게 무연 속으로 훅 사라져 버립니다. 또 도시에서 어쩌다 맺어진 유연은 시골처럼 빠져나갈 수 없는 유연이 아니라서 느슨하고 손만 놓으면 쉽게 약하기 마련입니다.
시골에선 고독사가 없습니다. 유독 도시에서 고독사가 빈번한 이유는 도시라는 곳이 무연이라는 자유를 얻은 대신 짊어져야 할 외로움 때문입니다. 올해 통계청이 발표한 「통계적 지역 분류체계로 본 도시화 현황」을 보면 202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도시화율은 90.7%라고 합니다. 도시화율은 기존의 행정구역상 도시 기준과는 별도로, 통계청이 UN에서 권고하는 인구 격자(1㎞×1㎞)를 활용한 통계적 지역분류체계에 따라 산정한 것입니다. 인구 격자 내 인구가 5만 명 이상이면 ‘도심’, 5,000명 이상이면 ‘도시 클러스터’, 그 외의 지역은 ‘농촌’으로 분류하고, 도심과 도시 클러스터를 합쳐 도시로 봅니다. 권역별로 보면 수도권의 도시화율은 97.1%, 경상권과 충청권, 제주권은 80%대, 전라권과 강원권은 70%대로 조사됐습니다
우리 대부분이 고독한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시에 살수록 나이가 들수록 의도적으로 유연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일부러 서로 교류하고 서로 간섭하고 서로 만나고 서로 소통해야 합니다. 원래 도시는 고독한 곳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