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요즘 주변에서 얻게 되는 정보의 9할은 건강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구분할 능력이 없으니 혼란스럽습니다. 거기에 어디 아프다는 얘기만 하면 평소보다 더 자상하게 치료법과 약제를 권하는 친절을 접하니 한민족이 지혜의 민족임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다 강권하는 분을 만나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신뢰가 가는 정보는 오랜 기간 추적 관찰한 임상 기록은 출처도 근거도 모르는 의학 정보보다는 훨씬 더 믿게 되고 결과에 대해서 수긍하게 됩니다. 그중 하나가 75년간 연구한 ‘인간 성장 연구’ 그랜트 보고서입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수들이 대를 이어 인생을 관찰한 이 보고서는, 2012년 3월 현재 생존한 68명의 그랜트 연구 대상자들의 제한된 정보이기는 하지만, 이 연구가 주는 여러 교훈 중의 하나는 ‘늙는다는 것이 그리 끔찍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이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지는 못하지만, 생존곡선(Survival Curve)은 변화시키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85세, 90세까지 살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올리버 웰던 홈스(Oliver Wendell Holmes, 1809~1894)의 시에서 묘사하듯이 ‘말 한 필이 끄는 멋진 마차가 100년 동안 사람들을 실어 나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산산이 부서지는 것처럼 사람도 오랜 세월을 살다가 한순간에, 죽음에 이른다’는 것을 말합니다.
1980년 스탠퍼드 대학교 내과 의사 이자 유행병학자인 제임스 프라이스(James Fries)는 이런 현상을 ‘질병의 압축(Compression of Morbidity)’이라고 했습니다. 1900년에는 대부분의 죽음이 조기 사망이었기 때문에 인간의 성장 ‘곡선’은 대각선 모양을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직각 모양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99881234라는 제목의 트로트 노래처럼 말입니다. 특히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위험 요인이 없는 경우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명확합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40년에는 1990년보다 85세의 노령 인구가 10배로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정상적인 인간의 수명이 증가했기 때문이 아니라 80세 전에 죽는 사람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70세가 되면 40세에 가졌던 후각 기능이 절반만 남고, 80세에는 시각 기능이 떨어져 안전한 야간 운전을 보장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인간의 뇌가 20세부터 퇴행하기 시작해서 70세가 되면 전체 뇌세포의 10%를 잃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렇지만 그랜트 연구에 따르면 90세에 이른 대상자 4명 중 3명이 정상적인 인지 기능을 갖고 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첨단의 뇌 영상 사진을 보면 노화가 생각만큼 끔찍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인의 뇌 위축은 두려워했던 것만큼 많지 않습니다. 뇌가 위축되는 것은 쓸모를 잃은 뇌세포를 우리 몸이 고의로 ‘가지치기(pruning)’한 결과일 수 있다는 가설도 있습니다.
지난주 고향에 들러 90세 모친을 모시고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70을 바라보는 누님들과 점심과 저녁을 나누고 찻집에서 늦게까지 시공을 뛰는 주제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눌 때 전혀 나이를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아픈 부분이 생기고 완벽하게 건강하지는 않았지만, 두려울 정도로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무엇을 잃어가는 과정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노년의 전형적인 모습은 약하고, 아프고, 불편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외가 있지만, 이러저러한 사실들을 고려해 보면 노년의 상태에 대해 그렇게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얻습니다. 늙어간다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