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가정(assumption)’이라는 방패를 앞에 세우고 이론을 전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한다던가, 시장은 효율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정리한 전통적 금융 이론은 시장이 효율적이라고 가정합니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말은 주식, 채권 등 금융상품의 가격에 투자자들이 이용 가능한 모든 정보가 적절히 반영되어 있다는 의미이며, 이를 위해 사람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람들이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들만큼의 합리성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은 심리에 영향을 받는 존재이기 때문이며, 전통적 금융 이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완벽하게 합리적이지 못하고 이성적 판단이 힘을 잃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락장에서 많은 투자자가 현명한 판단을 잃으며 손절매 타이밍을 놓치고 손실을 키울까요?
미국 프린스턴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2024) 명예교수는 이런 인간의 심리를 통해 경제를 들여다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결과, 똑같은 100만 원이라도 100만 원 벌었을 때의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었을 때의 고통이 크게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험 참가자들이 더 큰 손실을 감수했듯이 하락장의 투자자들은 손절매를 미루고 반등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가격이 하락한 주식을 처분해 손실이 확정됐을 때 느낄 상실감이 두려워 주식을 팔지 않고 계속 보유하는 심리입니다. 손실을 피하려다가 오히려 손실을 더 키우게 되는 경우도 발생되지만, 어쩌면 이런 행동은 인간이기에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모 증권사에서 밝힌 자료에서 보면 올해 특정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는 75만 명이고,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자 비율은 96.81%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거의 절대다수가 손실을 보았다는 것이 확인된 셈입니다. 행동 금융학에서 이런 심리는 ‘처분효과(disposition effect) ‘라고 합니다. 처분효과는 매수가격 대비 상승한 주식은 매도하여 이익을 실현하고, 매수가격에 대비 하락한 주식은 매도를 미루고 보유하는 현상을 의미합니다. Shefrin & Statman (1985)이 최초로 처분효과의 개념을 제시한 이후 처분효과의 특성, 배경, 영향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며 주식시장에서 대표적인 행태적 편의 (behavioral bias)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결국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며 언제나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존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로 가정하여 이론을 구성하면 타당성이 결여되어 현상에 대한 설명력과 예측력 그리고 처방 능력까지 잃고 맙니다.
가정이 달라지면 이론도 달라지고 때로는 패러다임조차 변화합니다. 어쩌면 역사상 위대한 연구들은 대부분 통념으로 간주하여 왔으나 현실적 타당성이 없는 가정과 전제들에 도전함으로써 탄생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최근 투자에서 큰 손실을 보고 있다고 침울해하는 친구의 걱정을 들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범상치 않게 비범하고 특출했던 친구가 처음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투자의사 결정 당시에는 분명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판단해서 결정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은 것뿐이지, 결과가 나쁘다고 정신이 병든 사람은 아니잖아요? 실망할 필요 없다고 격려했습니다. 결과까지 언제나 옳을 수는 없습니다.
잘나서 달랐던 친구, 마치 신(神)에게 도전할 듯이 뛰어났던 그가 투자 결과 하나로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껴집니다. 설령 조금 더 달랐었더라도 결국엔 보통으로 수렴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확인된 사실 하나가 있습니다. 우리는 신(神)이 아니라 그냥 겸손하게 보통 사람(人)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