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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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모두를 지키는 지혜

은퇴 후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자유’와 ‘여유’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일부 가정에서는 이 시기가 새로운 긴장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특히 남편이 친구나 사회적 네트워크 없이 배우자에게만 정서적·사회적 의존을 하는 경우,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아내에게 전가됩니다.

최근 한 독자의 사연은 이런 상황을 잘 보여 줍니다. 남편은 은퇴 후 우울감에 빠져 있으며, 모든 사회적 계획과 자극을 아내에게 의존합니다. 심리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권해도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주는 것 같다’는 피로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한 부부 갈등을 넘어, 은퇴한 남성들의 사회적 고립, 그리고 그로 인한 정서적 부담의 불균형이라는 사회적 현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왜 남성은 은퇴 후 더 외로워지는가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은 과거 남성들이 볼링 동호회, 노조, 시민단체 등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임은 시간이 지나며 줄어들었고, 이제 많은 남성들은 직장 외에 친밀한 관계를 만들 기회를 잃었습니다.

또한, ‘강한 남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은 도움을 청하거나 감정을 나누는 것을 약점으로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남성이 은퇴 후 사회적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됩니다. 실제로 이혼이나 배우자 사망 이후 남성의 사망률이 높아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정서적 고립’입니다.

아내가 느끼는 ‘돌봄의 비용’

이런 상황에서 아내는 배우자이자 친구, 상담사, 응원자, 심지어 이벤트 기획자 역할까지 떠맡게 됩니다. 초기에는 사랑과 헌신으로 감당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피로와 서운함, 심지어 우울감까지 번질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돌봄의 비용(costs of caring)’이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죄책감으로 덮여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닐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되지 않을까?’와 같은 생각은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결국 관계를 더 힘들게 만듭니다.

부부 모두를 지키는 6가지 제안

전문가들은 남편을 돕는 것만큼이나, 아내 자신의 정서적 건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다음 여섯 가지 제안은 많은 시니어 부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잘못된 책임감 내려놓기

배우자의 모든 정서적 요구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내가 덜 반응하거나 덜 시간을 내주는 것이 ‘나쁜 배우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 모든 역할을 맡지 않기

배우자, 친구, 상담사, 응원자, 기획자까지 한 사람이 모두 맡을 수 없습니다. 건강한 관계는 상호 투자에서 비롯됩니다.

⊙ 작은 불편함 허용하기

배우자가 스스로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모든 문제를 대신 해결하려 하지 마십시오. 약간의 공백이 변화를 이끌 수 있습니다.

⊙ 자신의 노고 인정하기

이미 해온 노력과 사랑을 잊지 마십시오. 죄책감은 이런 노력을 지워버리지만,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지원망 만들기

친구, 가족, 상담사, 혹은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모임을 찾으십시오. ‘빈 컵’에서는 아무것도 부을 수 없습니다.

⊙ 남편의 사회적 참여 촉진

시간제 일, 봉사활동, 동호회 등 새로운 목적과 관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안하십시오.

⊙ 활용할 수 있는 자원

Men’s Sheds: 남성들이 취미와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커뮤니티(영국, 호주, 미국 확장 중)

Encore.org: 중년 이후 의미 있는 제2의 인생을 찾는 이들을 위한 플랫폼

AARP 자원봉사 기회: 은퇴자가 지역사회에 기여하며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전국 단위 프로그램

마무리 — ‘더 많이’에서 ‘다르게’로

은퇴 후의 부부 관계는 단순히 함께하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그 질과 균형에서 건강함이 결정됩니다. 배우자를 돕는 것은 소중하지만, 나를 소모하면서까지 이어갈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제는 ‘더 많이 하는 것’에서 ‘다르게 하는 것’으로 전환할 때입니다.

나의 정서적 건강을 지키는 것은 결국 부부 모두를 지키는 일입니다. 부드러운 경계 설정과 자기 돌봄이 바로 그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