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9일
9-22-1800

–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

옳고 그름은 일본의 맥락에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양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지며, 그 상황은 다시 관련된 개인, 그들의 위치, 시기, 그리고 의도 등 수많은 변수에 좌우됩니다. 과거 일본에서의 옳고 그름은 고대 보편적인 개념인 ‘힘이 곧 정의(might is right)’에 근거했으며, 어느 정도는 지금도 그러한 면이 남아 있지만, 일반적으로 옳고 그름을 가려내는 문제는 훨씬 더 미묘해졌습니다.

옳고 그름의 정의가 얼마나 어려운지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 것은 일본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정치 스캔들의 이야기에서입니다. 물론 정치 지도자들과 그들의 도덕성을 논하는 것이 불공정하고 시간 낭비일 수도 있겠으나, 그들은 나라에서 가장 두드러진 역할 모델이므로 비판 대상이 됩니다.

일반적으로 일본 정치의 근간은 원칙이 아니라 정책에 기반해 왔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전통적으로 권좌에 오르고, 권좌를 지키며, 금전적으로 이익을 얻고, 가족·친구·지지자를 챙기는 것이었습니다.

총리를 비롯한 일본 최고위 정치인들의 두드러진 추문은 평범한 단어였던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원래는 ‘차이’ 혹은 ‘구별’을 뜻하던 말이었는데, 새로운 의미에서는 부정행위의 ‘외관(appearance of impropriety)’을 지칭하며, 이를 통해 누군가의 행동에 대해 판단을 내리고, 그 사람이 정치적 혹은 경제적 요직에 있을 경우 사퇴를 요구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불법적 재정 거래를 위장하기 위해 가장 흔히 쓰던 술책 중 하나는 비서나 아랫사람의 이름으로 거래를 수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에서는 중대범죄로 처벌받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대표이사를 둘로 두어서 위험을 분산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현대 일본에서 달라진 점은 정치인들의 비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언론이 케지메의 판사이자 배심원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형사 사법 제도가 아니라 언론이 거의 모든 주요 스캔들을 밝혀내고 폭로하여, 수많은 각료와 국회의원을 낙마시켰으며, 여러 총리들을 도망치듯 물러나게 만들었습니다. 언론은 누군가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하면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 판정을 내릴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간주해 왔습니다. 그리고 언론은 정치인들에게 막대한 여론 압력을 가해 그들을 사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즉, 언론이 ‘도덕의 감시견’ 역할을 맡은 것입니다.

케지메는 일본 기업 세계에서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특히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최고경영자와 관련해서 그러합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단어는 정치 세계에서만큼 빈번하게 사용되지는 않았습니다.

대형 사고에 연루되거나 환경오염, 혹은 그 밖의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저지른 기업의 사장은 스스로 사퇴하지 않을 경우 언론의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 판정의 대상이 됩니다. 일본의 못된 속사정이 우리나라에도 유행처럼 번져 ‘툭’하면 사퇴하라고 몰아 세우는 것이 바로 이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비록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라는 용어가 직접 쓰이지는 않더라도, 기업 내에서는 특정 관리자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단될 경우, 직원들이 은밀한 캠페인을 벌여 그를 몰아내는 경우가 정기적으로 발생합니다. 이러한 방식은 일본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수많은 외국인 주재 관리자를 쫓아내는 데에도 사용되었습니다.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는 단순한 ‘구분’이 아니라, 일본 사회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회적 장치로 진화했습니다. 특히 언론이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향해 ‘선을 넘었다’고 판정할 때, 이는 곧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일본에서는 법적 처벌보다도 언론과 여론이 내리는 ‘けじめ (케지메, 선 긋기, Drawing the Line) 판정’이 더 즉각적이고 강력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그리고는 뒤도 안돌아보고 매장해버리는 것이 관행처럼 작동해 왔던 것입니다. 그만큼 냉정한 것이 또 일본인의 속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