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나는 이슬람 역사에서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 사회가 교차하며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태동한 전환점이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무함마드 이전에는 ‘야스립(Yathrib)’이라 불리던 이 도시는 메카에서 약 320km 떨어진 오아시스에 자리 잡아 농경과 정착 생활이 가능했던 느슨한 형태의 가든 시티였습니다. 이러한 지리적 특성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였으며, 무함마드와 추종자들이 메카에서 쫓겨난 뒤 새로운 공동체를 세울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622년의 히즈라(Hijrah, 이주)는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영적 경험에 머물던 이슬람을 정치적 실체로 발전시키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무함마드는 정착민과 유목민 시스템의 요소를 융합하여 초부족적(tribal을 넘어서는) 공동체인 움마(ummah)를 창조하였고, 이는 곧 이슬람 국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메디나는 메카의 카으바 중심 부족 사회와 달리, 신앙에 기반한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하는 중심지로 기능하였습니다.
또한, 무함마드는 메디나 도착 직후 경제 제도 개혁을 시도하였습니다. 그는 시장을 면세 구역으로 선포하여 상업 활동을 촉진하였고, 금요일을 회중 예배일로 지정해 종교적 모임이 곧 활발한 시장 거래와 연결되도록 하였습니다. 이로써 메디나는 종교적 신앙과 상업적 활동이 긴밀히 맞물린 독특한 정치·경제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정치적 측면에서도 메디나는 획기적인 변화의 무대였습니다. 단순한 모스크가 정치 본부로 기능하며, 신앙의 중심이자 행정의 중심이 되었고, 문해율이 높았던 도시적 배경은 꾸란의 확산에도 유리하게 작용했습니다. 무함마드는 메디나 공동체 안에서 의사결정 구조를 제도화하고, 종교적 가치 위에 새로운 정치 질서를 세우는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메디나의 지리적 중요성은 단순히 안전한 오아시스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 국가의 발판이자 정치적 중심지로서 종교와 무역, 제도와 공동체를 통합하는 새로운 문명의 시작을 이끌어낸 데 있었습니다. 이는 아랍 역사의 방향을 바꾼 결정적 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