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9일
10-17-1800

– 有りがた迷惑 (ありがためいわく, 아리가타 메이와쿠; 고마우면서도 곤란한 호의, Too Much of a Good Thing)

일본인은 지극히 영리한 민족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상 모든 일본 성인은 심리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만큼의 ‘현장 교육(on-the-job training)’을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인간관계 기술은 일본의 전통 예절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자기수양의 수단일 뿐 아니라 타인을 기대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게 만드는 ‘조종의 기술’이기도 했습니다.

법적 제재뿐 아니라, 유교적 도덕 원칙에 근거한 깊은 윤리 의식이 일본인의 세세한 행동 양식을 규정했습니다. 또한 사회의 경쟁적 특성도 사람을 조종하는 기술을 익히게 했습니다. 개인 간, 집단 간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타인의 행동을 유리하게 이끌어내는 능력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었습니다.

일본의 도덕관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의무(義務, gimu)의 이행이었습니다. 성별, 나이, 지위,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발생하는 수많은 의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일본인들은 새로운 의무가 생길 만한 상황을 피하려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특성을 이용하여, 일부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有りがた迷惑 (ありがためいわく, 아리가타 메이와쿠; 고마우면서도 곤란한 호의, Too Much of a Good Thing)’, 즉 ‘고마우면서도 곤란한 호의(unwelcome kindness, misplaced kindness)’를 베풀며 부담을 지우곤 했습니다.

현대 일본에서는 예전보다 이러한 현상이 더 흔해졌습니다. 사회적 교류가 많아지고, 원하든 원치 않든 ‘호의’를 주고받을 기회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인들은 원치 않는 호의를 무시하거나 없는 일처럼 행동하는 데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이러한 ‘선의의 부담’을 구분하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외국인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하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 또한 수십 년간 일본에 살면서, ‘무례한 미국인’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처음 만난 일본 지인들에게 조언이나 도움을 제공하느라 수많은 시간을 ‘기부’한 적이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일본인을 도우려는 또 다른 이유는 일본인의 전통적 성격 때문입니다. 서양인의 눈에는 일본인의 겸손하고, 온순하며, 진실된 태도가 순진하고 무력해 보이기에 돕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진정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 과시(egoism)입니다. 일본인들은 이러한 ‘도와주려는 심리’를 정확히 간파하고 이를 영리하게 활용합니다.

한편, 일본에 오래 머무르는 일부 외국인들은 이 ‘의무의 힘’을 이용해 아예 ‘아리가타 메이와쿠’를 직업화하기도 합니다. 즉, 일본 사회의 핵심 인물들에게 일부러 ‘사회적 빚(social debt)’을 만들어 두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입니다. 물론 일본인들은 이런 ‘잘못된 친절’을 한눈에 알아보고, 자신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이를 받아들입니다.

결국, 일본식 인간관계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의무를 피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의무를 제때 갚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나중에 거절하기 힘든 부탁을 받는 상황에 처하지 않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