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9일
10-17-2200

아랍어는 단순히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수단을 넘어 광대한 제국을 운영하고 서로 다른 문화를 결속하는 행정 및 문화적 링구아 프랑카(공통어)로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이러한 역할은 아랍인의 3,000년 역사에서 아랍어의 역할이 정점(Dominance)에 달했음을 보여줍니다.

1. 행정 언어(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

아랍어가 제국의 행정 언어가 된 것은 우마이야 칼리프조 시대에 이루어진 혁명적인 결정이었습니다.

  • 행정 언어 채택 배경: 아랍 제국은 초기에는 비잔티움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으로부터 물려받은 행정 노하우를 채택하여, 통치를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팔레비어)로 수행했으며, 주화 역시 이들의 것을 사용했습니다.
  • 결정적인 전환: 서기 700년경, 우마이야 칼리프 압둘 말리크(Abd al-Malik)는 행정상의 그리스어와 페르시아어 사용을 중단하고 아랍어를 제국의 행정 언어로 사용하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 제국의 아랍화 가속: 이 결정은 제국과 그 주민들을 놀라운 속도로 아랍화(arabicized)시켰습니다. 아랍어는 “새로운 라틴어(the new Latin)”가 되었는데, 이는 아랍 문화와 언어가 라틴어처럼 쇠퇴하는 것을 막고, 제국의 통치와 행정을 위한 도구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 행정의 효율성 제고: 아랍어 기록이 기존의 그리스어나 페르시아어 기록보다 우수하다는 점이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일례로, 비잔티움 서기가 잉크가 부족하자 잉크통에 소변을 보았다는 이야기는 아랍어로 행정 언어를 변경한 배경 중 하나로 언급되는데, 이는 아랍어 글쓰기 방식이 기존 행정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극복했음을 암시합니다.
  • 주화 개혁: 압둘 말리크는 아랍어 전설이 새겨진 새로운 아랍식 주화(coinage)를 발행했습니다. 이는 아랍어가 단순한 행정 문서뿐만 아니라 경제적 상징성까지 확보했음을 보여줍니다.

2. 문화적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

아랍어는 제국의 행정적 성공을 바탕으로 종교, 학문,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지배적인 언어(lingua franca)로 확고히 자리매김했습니다.

  • 문화적 결속력: 아랍어는 초기 이슬람 제국 전역에서 문화, 예배, 행정의 매개체가 되었습니다. 아랍어의 확산은 지리적으로 광대한 지역(파미르 고원에서 피레네 산맥까지)을 포괄하는 “위대하고 영속적인 문화 제국(great and enduring cultural empire)”을 낳았습니다.
  • 정체성의 기반: 아랍어는 아랍 정체성의 “숨겨진 실타래(hidden thread)”였으며, 아랍인을 하나의 문화적 민족(Kulturnation)으로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통일성은 정치적 통일(Staatsnation)의 이상보다 훨씬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 학문과 지식의 언어: 행정 언어로의 채택은 아랍어가 쇠퇴하는 것을 막고, 아랍 문명이 문명과 과학의 언어로 발전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특히 압바스 왕조 시대에는 번역 운동(translation movement)이 활발히 일어나 그리스어, 페르시아어, 산스크리트어 등 고대 문명과 외국의 사상이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이는 아랍-이슬람 문명의 지적 성장을 이끌었습니다. 이러한 지적 활동은 아랍어 어휘를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 문서 혁명의 촉진: 우마이야 시대의 아랍어 행정 사용 증가는 필기 속도를 높이기 위한 새로운 필기체 서체의 개발로 이어졌으며, 이후 압바스 시대에 중국에서 유입된 종이와 결합하여 문서 혁명(writing revolution)의 세 번째 단계(쿠란, 행정 아랍화 다음)를 완성했습니다. 이로써 아랍어 문화는 서기 750년부터 1500년 사이에 지식과 정보의 대량 생산 및 보급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3. 아랍어 역할의 역설과 그 결과

아랍어는 제국의 링구아 프랑카로서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아랍인들의 정체성에는 역설적인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 아랍인의 소멸: 아랍어는 문화적으로 승리했으나, 아랍인들 스스로는 자신들이 세운 제국에 “바닷물 속의 소금처럼 용해되어(dissolved by their own empire like salt in seawater)” 사라지거나 “눈에 보이지 않게(invisible)” 되었다고 묘사됩니다. 아랍어 사용자(arabophones)는 지브롤터 해협부터 호르무즈 해협까지 확산되었지만, 혈통적 아랍인들은 그들의 성공의 “희생자(victims of their own success)”가 된 것입니다.
  • 통일과 분열의 지속: 아랍어는 통일의 강력한 촉매제였지만, 정치적 분열과 내전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행정적 통일(언어)은 이루어졌으나, 정치적 통일은 내부 경쟁과 분열 경향 때문에 달성되지 못했습니다.
  • 외부 세력에 의한 문화 계승: 아랍어가 행정 및 문화적 링구아 프랑카로 확산되면서, 정작 아랍인이 아닌 사람들(mawlas, 비아랍인 학자)이 아랍 문화의 전통을 수집, 분석, 발전시키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들 외부인들은 아랍어를 통일된 문화의 언어로 공고히 하는 데 기여했으나, 이는 아랍 문화가 비아랍적 요소와 융합하며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랍어는 아랍인의 3,000년 역사에서 초기 부족들의 시적 언어(’arabiyyah)에서 시작하여, 쿠란의 신성한 계시를 통해 종교적 권위를 얻었고, 제국의 행정 언어 채택을 통해 글로벌 행정 및 문화적 링구아 프랑카로서의 역할을 확립하며 아랍 문명의 지속적인 기반을 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