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07일
11-24-1800

– 悟り (さとり, 사토리, 깨달음, Seeing the Light)

수십 년 동안 저는 일본 기업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외국인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중에는 20년 이상 근속한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가장 많이 호소한 불만은 자신이 몸담은 일본 회사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고, 하루하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무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해당 외국인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말하거나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경우에는 일본어에 유창할 뿐 아니라 일본적 행동의 뉘앙스 대부분을 지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두 능력은 반드시 서로 의존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들 모두에게 부족했던 단 하나는 일본인의 ‘심성(psyche)’이었습니다. 일본인의 정신과 영혼은 지적 노력으로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잠재의식 속에서 스며들 듯 체화되는 것입니다. 일본 기업에 오래 근무한 외국인들도 원하면 일본인처럼 생각할 수 있었고,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일본인처럼 반응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일본식 소프트웨어’가 켜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는 문화적 감각이 활성화되지 않아 여전히 맥을 짚지 못한 채 ‘상황판단을 못한 어리버리한 상태’로 남았습니다.

반면 일본인 동료들의 정신 소프트웨어는 타고난 것이며, 그들의 사고를 구성하는 유일한 기반이었습니다. 또한 일본인들의 정신 구조는 공통의 문화적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동일한 문화적 지식과 경험의 저장소를 공유하기 때문에 서로의 가치관, 감정, 행동 양식을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공동의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이 공유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길게 토의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일본인들은 너무 자세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받는 것을 불쾌하거나 모욕적으로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오랜 문화적 공통성이 만들어낸 특성입니다. 이 때문에 일본의 경영진 및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세세한 지시를 정기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편입니다.

신입사원들은 기업 철학, 집단주의, 협력, 팀워크에 관한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후, 그 이후에는 관찰과 실천을 통해 스스로 파악해야 합니다. 무엇이 진행되고 있는지, 일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본 기업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따라서 외국인이 보기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핵심 요소가 있습니다. 이는 일본어라는 언어 자체와 그것이 문화적으로 용인되는 방식 때문입니다. 일본어는 항상 절대적으로 명확하고 정확한 표현을 허용하는 구조가 아닙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에는 모호성이 많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일본에서 많은 내용이 직접적으로 말해지지 않고 상대가 알아서 이해해야 하는데, 이를 ‘ 悟り (さとり, 사토리, 깨달음, Seeing the Light)’라고 부릅니다. 사토리는 본래 불교 용어로 ‘영적 깨달음’ 또는 ‘영적 각성’을 의미하지만, 일상적 사용에서는 말로 설명되지 않은 내용을 문맥과 분위기에서 ‘갑자기 이해해 버리는 것’을 뜻합니다.

일본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바로 이 ‘ 悟り (さとり, 사토리, 깨달음, Seeing the Light) 과정’을 통해 회사의 분위기, 규칙, 암묵적인 기대를 스스로 알아차릴 것을 당연시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외국인 직원들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느낌은 마치 걷고 있는데, 발바닥이 땅에 닿지 않고 걷는 기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주재원으로 일하지 않은 것이 뒤돌아 보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悟り (さとり, 사토리, 깨달음, Seeing the Light)’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