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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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삼킨 구독 소프트웨어 시장의 붕괴가 주는 교훈

한 시대를 대표하던 산업이 무너지는 광경

지난 8월 8일과 9일 자 월스트리트저널 주말판 1면과 A10면에는 케이트 클라크 기자가 쓴 기사가 실렸습니다. 제목은 인공지능의 종말적 충격 앞에서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스스로를 다시 만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리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낯선 실리콘밸리의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 담긴 이치는 우리 시니어 세대가 지난 삶에서 여러 차례 목격했던 그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사힐 아가르왈이라는 창업자는 2021년 영업 담당자의 행정 업무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 회사를 세웠습니다. 투자자들로부터 약 3,000만 달러(약 420억 원)를 모았고, 이듬해 기업 가치는 1억 달러(약 1,400억 원)를 넘겼습니다. 그러나 곧 생성형 인공지능이 등장해 그가 팔던 기능을 손쉽게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기존 제품에 인공지능을 덧붙이려던 시도를 두고, 마차에 엔진을 매다는 일 같았다고 회고했습니다. 결국 그는 70명이던 직원을 15명으로 줄이고, 제품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었습니다.

숫자가 말하는 지각변동

구독형 소프트웨어, 이른바 사스(SaaS·Software-as-a-Service) 산업은 2010년대의 총아였습니다. 그러나 워크데이, 세일즈포스, 어도비 같은 상장 대표주자들의 주가는 최근 1년 사이 고점 대비 30퍼센트 이상 내렸습니다. 아이비엠(IBM)은 고객의 지출이 소프트웨어에서 인공지능 하드웨어로 옮겨간다는 실적 경고를 낸 뒤 하루 만에 시가총액 690억 달러(약 96조 6,000억 원)가 사라졌습니다. 업무흐름 관리 기업 에어테이블은 비상장 시절 평가액 110억 달러(약 15조 4,000억 원)에 한참 못 미치는 13억 달러(약 1조 8,200억 원)에 인수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반면 방향을 일찍 튼 기업은 살아남았습니다. 고객서비스 소프트웨어 기업 인터콤이 만든 인공지능 상담 대행 제품은 연간 반복 매출 4억 달러(약 5,600억 원)를 달성했고, 세일즈포스가 36억 달러(약 5조 4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습니다. 영업 소프트웨어 기업 공(Gong)은 전 직원을 재교육한 끝에 연간 반복 매출 5억 달러(약 7,000억 원)를 넘겼습니다. 아가르왈의 회사도 이름을 바꾸고 다시 시작해 최근 연간 반복 매출 100만 달러(약 14억 원)를 기록했습니다.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일의 주체입니다

이 격변의 본질은 기술의 성능이 아닙니다. 시장의 수요가 사람의 일을 거들어 주는 도구에서, 사람을 대신해 일을 끝내는 주체로 옮겨갔다는 데 있습니다. 도구는 사람의 숙련을 전제로 하지만, 대행자는 사람의 자리를 전제로 합니다. 그래서 기존 기업들이 인공지능을 제품에 덧붙이는 방식으로는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 창업자의 표현대로, 두 사람의 기술자가 몇 주 만에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사업이라면 그 사업은 이미 존립 근거를 잃은 셈입니다.

여기서 짚어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이 변화의 속도는 시장의 판단력을 앞질렀습니다. 불과 몇 해 전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던 기업들이 지금은 청산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 폐업 절차를 돕는 한 회사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의뢰 고객의 51퍼센트가 소프트웨어 또는 정보기술 서비스 기업이었으며, 1년 전 44퍼센트보다 늘었다고 합니다. 열광이 판단을 대신할 때 어떤 대가가 따르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우리 사회가 새겨야 할 것

첫째, 자산의 문제입니다. 인공지능 관련 투자 열기는 지금 우리 주변에도 밀려와 있습니다. 그러나 위 사례는 같은 기술 물결 안에서도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평생 모은 자산을 유행하는 이름 하나에 맡기는 일은 삼가야 합니다. 시니어의 자산은 회복할 시간이 짧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의 그것과 성격이 다릅니다.

둘째, 일자리의 문제입니다. 이번에 무너진 것은 육체노동이 아니라 문서 정리, 자료 조사, 반복 사무 같은 이른바 사무직 업무였습니다. 정년 이후 재취업 시장에서 시니어가 주로 향하던 영역과 상당 부분 겹칩니다. 정부와 기업이 시니어 일자리를 설계할 때, 인공지능이 쉽게 대체하는 업무에 예산을 몰아넣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합니다.

셋째, 태도의 문제입니다. 살아남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기술을 쫓아간 것이 아니라 전 직원을 다시 가르쳤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는 시니어에게 배울 기회를 충분히 제공해야 하고, 시니어 또한 배우기를 그만두지 않아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시혜가 아니라 상호 존중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변화의 속도는 우리가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지킬 것인지는 우리가 정할 수 있습니다. 오래 축적한 판단력과 신중함은 인공지능이 복제하기 가장 어려운 자산입니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되,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 것. 이 오래된 원칙이 지금처럼 유효했던 때도 드뭅니다.

용어: 사스(SaaS)는 소프트웨어를 설치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빌려 쓰는 구독 방식을 뜻하며, 연간 반복 매출(ARR)은 구독 계약에서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매출 규모를 가리킵니다.

캐어유 뉴스 편집장 김형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