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잠(’ajam)은 아랍 사회에서 아랍인(’arab)과 대조되는 개념으로, 주로 비아랍인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 개념은 아랍인의 정체성 형성과 언어적 자부심, 그리고 이슬람 문명 내에서의 문화적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어원적으로 아잠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자’, ‘말을 더듬는 자’를 뜻하는 a’jam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는 곧 아랍인과 비아랍인의 구분을 나타내는 대립 구조를 형성하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자신과 타인을 ‘그리스인/야만인’으로 나눈 방식, 또는 슬라브인과 넴치인의 구분과도 유사한 맥락을 보여줍니다.
아랍인들은 이러한 대립을 통해 자신들을 언어를 공유하는 민족 집단으로 인식하고 강한 연대감을 형성하였습니다. 아랍어에 대한 자부심은 곧 힘의 표현이었으며, 이는 일종의 언어적 민족주의로 발전하였습니다. 9세기 학자 알-자히즈는 아랍인의 수사적 능력이 직관과 즉흥성, 영감에서 비롯된다고 보았고, 반대로 비아랍인의 언어 능력은 긴 사색과 훈련의 결과라고 평가하였습니다. 이는 아랍어가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아랍 정체성의 본질로 여겨졌음을 보여줍니다.
역사적으로도 아잠의 의미는 변화하며 아랍 사회에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슬람 초기에는 무함마드가 아랍인을 ‘단어(Word)’ 아래 단결시키며 공동체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아잠은 이슬람 확산의 대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마이야 왕조는 유목적 성격을 강하게 띠며 아랍적 정체성을 강조했지만, 아바스 왕조에 이르러서는 페르시아적 색채가 짙어지면서 ‘아잠’이 권력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바그다드에서는 아랍인의 비중이 감소하며 정체성의 긴장감이 뚜렷해졌습니다.
또한 슈우비야 운동은 아잠이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아랍 문화 안에서 적극적으로 자기 정체성을 주장하는 세력이었음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바샤르 이븐 부르드와 같은 인물은 아랍 유목적 생활을 비판하고 페르시아계 무슬림으로서의 자긍심을 드러내며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했습니다.
제국이 쇠퇴하고 비아랍계 세력이 통치권을 차지하면서 ‘진정한 아랍인’의 의미는 점차 희미해졌고, 아랍이라는 용어는 다시 주변 부족을 지칭하는 본래 의미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아랍과 아잠의 구분은 언어와 종교, 사회적 정체성에 걸쳐 끊임없이 작용해 온 커다란 이중성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흔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아잠은 아랍인들이 스스로를 ‘우리’로 인식하고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언어와 문화, 사회적 위상을 구축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