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즈티하드(ijtihad)는 아랍 사회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로, 개인이 알라께서 선지자 무함마드를 통해 인류에게 전달하신 계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기울이는 지적이고 영적인 노력을 가리킵니다. 이는 곧 ‘개별적인 투쟁’을 뜻하며, 초기 이슬람의 지적 발달과 이후 종교적 권위의 변화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정의와 의미에서 이즈티하드는 ‘투쟁’을 의미하는 지하드(jihad)와 어원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으타질라(Mu’tazilah) 학자들에게 이즈티하드는 “개인이 알라께서 그분의 사자를 통해 전하신 뜻을 이해하기 위한 지적 투쟁”을 의미했습니다. 이는 경전과 종교적 텍스트를 개인이 스스로 해석하고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압바스 시대에는 무으타질라 학자들이 이러한 이즈티하드의 가치를 특히 강조했습니다. 개인의 역할, 도덕적 책임, 경전 해석 능력을 중시하였으며, 칼리프 알-마으문(al-Ma’mun)의 후원 아래 그들의 사상은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아랍 사회가 보여준 지적 개방성과 사유의 자유를 잘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그러나 알-마으문의 세 번째 후계자인 알-무타와킬(al-Mutawakkil) 시기에는 중대한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무으타질라 학자들의 논의와 자유로운 사유가 금지되었으며, 꾸란이 창조된 책이며 개인이 해석할 수 있다는 견해는 이단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대신, 타끌리드(taqlid, 전통적 해석을 따름)의 원칙이 강화되었고, 신의 말씀은 오직 공식적으로 인정된 해석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음을 강요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흔히 “이즈티하드의 문이 닫힌 것”으로 표현되었고, 한 평론가는 이를 “사고의 중단”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즈티하드의 종식은 아랍-이슬람 지성사의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개인적 사유와 해석의 자유가 제약을 받게 되었고, 사변적 토론이나 독자적 의견 형성은 이단으로 의심받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슬람이 초창기 두 세기 동안 지적 탐구를 통해 정통성을 확립해 나가던 과정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불러왔으며, 이후 아랍 문명의 정신적 토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정리하자면, 이즈티하드는 신성한 계시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개인의 자율적이고 지적인 노력을 상징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압바스 시대 특정 시점에서 그것은 억압되었고, 타끌리드의 강요와 함께 아랍-이슬람 사상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