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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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즈라(Hijrah)는 예언자 무함마드께서 메카에서 메디나(당시 이름은 야스리브)로 이주하신 사건을 지칭하며, 아랍 사회의 핵심 개념과 용어의 맥락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이슬람력의 기원인 서기 622년을 기념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랍인의 정체성과 이슬람 공동체의 형성에 있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무함마드의 메디나 이주, 곧 히즈라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 정의와 초기 의미

히즈라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다른 나라로의 이동’을 뜻합니다.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사건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메카의 이교도들은 이 이주를 기존 부족 연대(아사비야, ’asabiyyah)를 해체하는 단절 행위로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자가 부족으로부터 추방되어 다른 땅으로 도피하는 경우와 유사하게 여겨질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2. 새로운 공동체와 ‘슈퍼-아사비야’의 창조

무함마드는 히즈라를 통해 전통적인 부족주의적 아사비야를 해체하였지만, 메디나에서는 전례 없는 ‘슈퍼-아사비야’를 창출하였습니다. 이는 신에 대한 충성과 믿음을 기반으로 한 초부족적 공동체, 곧 ‘슈퍼 부족’을 형성한 것으로, 이슬람 공동체의 출발을 상징합니다. 히즈라는 단순한 종교적 사건을 넘어 정치적 행동으로 발전하였으며, 메디나에서 모스크는 단순한 예배 공간을 넘어 정치·상업·영적 기능이 결합된 새로운 제도적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3. 의미의 확장과 아랍 정체성의 재정의

시간이 흐르면서 히즈라는 단순한 지리적 이동을 넘어 ‘이동성’, ‘노력’, ‘구원’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는 과거 부족으로부터 추방된 방랑자(수아루크, su’luks)의 삶과도 연결되며, 그 정신이 공동체적 운동으로 확대된 형태였습니다. 무함마드 사후의 정복 시기에는 히즈라가 ‘군 복무’의 의미로도 해석되었으며, 반대로 ‘타아루브(ta’arrub, 고향과 옛 방식으로 되돌아감)’는 거의 배교 행위에 준해 여겨졌습니다. 이는 곧 아랍인들이 기존 부족적 뿌리로부터 단절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세워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4. 바다위와 하드하리의 이중성

무함마드는 히즈라를 통해 유목민적 요소(badw)와 정주민적 요소(hadar)를 결합하여 초기 이슬람 국가를 구축하였습니다. 히즈라는 전이슬람 시대 부족 이동의 전통을 잇되, 자발적이면서도 중앙집권적으로 설계된 새로운 형태였습니다. 이는 ‘이동하는 고향(dar hijrah)’의 개념을 낳으며, 아랍인의 생활과 정체성을 새롭게 규정했습니다.

5. 아랍 역사에서의 의의

히즈라는 아랍인들에게 세계사의 무대에서 능동적 목소리를 부여하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이는 ‘메카와 이주’라는 아라비아적 이중성을 드러내며, 통합과 분열의 양면성을 동시에 보여주었습니다. 순례자들이 희망을 안고 떠나지만 항상 이동을 이어가야 하는 그 긴장감이 히즈라의 본질에 담겨 있습니다.

6. 현대적 재해석

현대에 와서 일부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은 히즈라를 과거 메디나 공동체의 이상을 재현하려는 방식으로 해석하며, 전투와 순교를 재현하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근대 아랍 각성 운동(Nahdah)에서는 ‘증기 시대의 히즈라(hijrahs of steam)’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낡은 제약을 벗고 새로운 세계로 향한 이동과 창조성을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시인 주브란 칼릴 주브란은 히즈라를 통해 오스만 제국의 긴 고립과 고대 아라비아의 전통적 제약에서 벗어나 창조적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결론적으로 히즈라는 단순한 장소적 이동을 넘어, 부족주의적 질서를 해체하고 신과 공동체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종교적 질서를 구축한 결정적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아랍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정의하였고, 이동성·단결·군사적 확장이라는 폭넓은 의미를 품으며, 아랍 역사의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