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시대 초기: 압바스 왕조 (바그다드)

압바스 왕조(The Empire of Baghdad)를 아랍 역사의 두 번째 주요 시대인 ‘지배와 쇠퇴 (Dominance and Decline: 630년 – 1350년)’의 핵심적 단계로 다루고 있습니다. 압바스 왕조는 이슬람 시대 초기의 군사적 성공을 지적·행정적 문명으로 전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동시에 아랍적 정체성(’urubah)이 정치적 중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분기점이기도 하였습니다.
1. 우마이야 왕조로부터의 혁명적 전환
압바스 왕조는 우마이야 왕조의 세속적 아랍 부족주의에 대한 반발로 일어난 혁명의 산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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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바스 혁명(750년)은 쿠라산(Khurasan)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압바스 왕조는 ‘비아랍적이고 쿠라산적인(’ajamiyyah khurasaniyyah)’ 왕조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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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이야 왕조의 마지막 총독은 “이슬람과 아랍인들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 것”이라며 혁명의 위험성을 경고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슬람은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번영하였습니다. 다만 아랍적 정체성(arabness)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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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칼리프 아부 알-압바스(Abu ’l-Abbas)는 ‘알-사파(al-Saffah)’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선물을 주는 자’와 ‘피를 흘리는 자’라는 상반된 의미를 지녔으며, 동시에 ‘웅변을 휘두르는 자(Wielder of Words)’라는 뉘앙스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중성은 왕조의 운명을 암시하였습니다.
2. 바그다드의 건설과 제국의 다원화
압바스 왕조는 정치적 중심을 다마스쿠스에서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옮기며 제국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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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2년 알-만수르(al-Mansur) 칼리프가 건설한 바그다드는 ‘세계의 중심’을 지향하는 원형 도시(Round City)로 설계되었습니다. 비록 현재는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지만, 당시 바그다드는 거대한 제국의 심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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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체제는 아랍인 중심에서 벗어나 비아랍인에게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초기 재상(wazir)직은 페르시아계 바르막(Barmak) 가문이 맡았는데, 이 가문은 원래 발흐(Balkh)의 불교 사원 사제 출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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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바그다드에는 유목민 아으라브(a’rabi), 투르크인, 메카 출신 상인, 메소포타미아 토착 농민(Nabati peasants), 흑인 잔지(Zanjis), 인도계 신디(Sindis) 등 다양한 민족과 계층이 공존했습니다. 이 시기 아랍인 정체성은 점차 정치·사회적 의미를 상실해 갔습니다.
3. 지적 황금기: 번역 운동과 과학의 발전
압바스 왕조는 아랍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적 황금기를 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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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프 알-마으문(al-Ma’mun)은 바그다드에 ‘지혜의 집(Bayt al-Hikmah)’을 세우고, 그리스·헬레니즘 과학과 철학 저작을 아랍어로 번역하는 대규모 운동을 후원했습니다. 이로써 근동과 비잔틴 동부에 남아 있던 고대 지식 대부분이 아랍어로 전승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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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어는 단순한 행정 언어를 넘어 학문·과학·문명의 보편적 언어로 자리잡았으며, 이는 압바스 시대의 위대한 업적 중 하나였습니다.
4. 아랍적 정체성의 변화와 쇠퇴의 씨앗
압바스 왕조는 문화를 풍요롭게 했으나, 정치적 측면에서 아랍성은 점차 약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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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민 집단은 점차 도시 생활에 편입되었습니다. 알-마흐디(al-Mahdi) 칼리프가 유목민에게 연금을 지급하며 제국 체제 속에 통합한 일화는, 과거 아랍 부족 사회의 종말을 상징하는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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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중반 이후 투르크계 용병이 권력의 중심으로 부상했습니다. 알-무으타심(al-Mu’tasim)은 투르크 병사들을 위해 사마라(Samarra’)라는 새 수도를 건설하였고, 이들은 ‘비아랍인 유목민’으로 간주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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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기 중반, 투르크 장군 바즈캄(Bajkam) 등은 스스로를 ‘아미르 중의 아미르(amīr al-umarāʾ)’라 칭하며 화폐에 자신의 초상을 새겼습니다. 칼리프는 점차 명목상 존재로 전락했고, 아랍 세력은 정치적 지배권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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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어만큼은 끝까지 통제하려 하였습니다. 이는 고대부터 이어져 온 ‘말을 모으는(gathering the word)’ 정책의 또 다른 형태였습니다.
결국 압바스 왕조는 이슬람 세계의 정복지를 거대한 문명 공동체(Kulturnation)로 발전시킨 시대였으나, 동시에 아랍 민족의 정치적 주도권이 투르크와 이란계 세력으로 넘어가는 쇠퇴의 씨앗이 뿌려진 이중적 시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