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0일
8-27-1800

–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자르기; Cutting Off the Legs)

일본 역사에서 칼이 차지한 역할은 매우 두드러지며, 다른 문화에서는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총이나 다른 무기가 각국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지만, 일본처럼 칼이 숭배와 종교적 상징에 가까운 지위를 얻은 경우는 드뭅니다. 일본 문화에서 ‘자르다(切る, きる, 키루)’라는 동사를 바탕으로 한 수많은 단어들이 칼의 중요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할복(腹切り, はらきり, 하리키리) 은 사무라이의 의례적 자결 방식을 뜻하며, ‘자르다’라는 기본 의미에서 파생된 切る(키루) 자체도 ‘죽이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切りまくる(키리마쿠루, 마구 베다), 切り回す(키리마와수, 관리하다), 切り盛り(키리모리, 경영·관리), 切り結ぶ(키리무수부, 칼싸움하다), 切り替える(키리카에루, 바꾸다·갱신하다) 등 다양한 표현들이 존재합니다.

특히 首切り(쿠비키리, 목을 자르기) 는 원래 ‘참수’를 뜻했으나, 현대 일본어에서는 ‘해고하다’라는 일상적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足切り(아시키리, 다리 자르기) 라는 표현은 1980년대 후반 유행한 말로, 시험 점수를 기준으로 지원자를 걸러내는 행위를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커트라인으로 절대평가의 뜻입니다.

1979년 일본 정부는 국립·공립대학 진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학력 표준시험을 도입했습니다. 일정 점수 이상을 얻어야만 특정 대학의 입학시험을 치를 수 있었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면 1년을 기다려 다시 시험을 봐야 했습니다. 이로 인해 매년 수십만 명의 낙방생이 ‘浪人(ろうにん, 루우인, 낭인; 재수생; 주군 없는 사무라이에서 유래)’이라 불리며 재도전을 준비했습니다.

1987년에는 시험 과목 수를 7개에서 5개로 줄이고, 국립·공립대 시험일을 분리했으며, 최대 2개 대학까지 응시할 수 있도록 개혁했습니다. 그러나 시험 응시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오히려 전례 없는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자르기; Cutting Off the Legs)’가 발생해, 합격자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즉, 제도 개혁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은 더 늘어나, 浪人(재수생)도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자르기; Cutting Off the Legs)’는 기업 채용에서도 널리 활용되었습니다. 일본 대기업들은 필기시험 성적이 우수한 지원자만 채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동시에 교수의 추천이나 학교 시절의 뛰어난 운동 경력도 중요한 선발 기준이 되었습니다. 2차대전 이후 일본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들은 처음에는 일본 기업들에서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자르기; Cutting Off the Legs)’된 지원자들을 받아야 했지만, 1980년대 이후 일본식 교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서 우수한 인재를 유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자르기; Cutting Off the Legs)’는 일본 사회에서 교육 엘리트를 나머지와 구분하는 제도로 기능하며, 학력과 사회적 지위의 격차를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 자르기)’는 초기 탈락으로 인해 성과가 늦게 나타나는 사람들의 성장 가능성을 차단하며, 이는 사회 전체의 잠재력 손실로 이어집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자격증을 비롯한 각족 시험에서 평균점수 및 과락, 커트라인 등 성적으로 지원자를 구분하는 것을 일본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무라이 계급을 경험하지 못한 역사 문화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일본인의 속마음을 알고 접근하는 것도, ‘足切り(あしきり, 아시키리; 다리 자르기)’가 한국 사회에 적용되고 있음에 대해서 분명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