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05일
11-4-2200

이븐 바투타(Ibn Battutah)는 아랍인의 3,000년 역사 중 ‘일식기(ECLIPSE: 1350년~1800년)’에 활동한 주요 인물이며, 그는 정치적 권력이 쇠퇴한 시대에 아랍 문화의 지리적 확장성과 영속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라는 더 큰 맥락에서 논의될 수 있습니다. 그는 광범위한 여행 기록을 통해 아랍-이슬람 세계의 지식과 문화적 영향력이 얼마나 멀리 퍼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1. 시대적 배경과 역할: 문화적 아랍인의 전형

이븐 바투타의 활동 시기는 아랍 정치 권력이 완전히 쇠퇴한 후, 튀르크족과 몽골족이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합니다.

  • 가장 광범위하게 여행한 인물: 그는 14세기 초 모로코에서 태어났으며, 증기 시대 이전까지 아마도 가장 광범위하게 여행한 인간일 것입니다. 그의 여행은 니제르강(Niger)부터 중국의 대운하(Grand Canal), 볼가강(Volga)부터 남부 탄자니아에 이르는 광범위한 구세계(Old World)를 가로질렀습니다.
  • 문화적 아랍인으로서의 정체성: 그는 유전적으로는 베르베르족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문화적으로는 철저히 아랍인이었습니다. 그는 쿠란과 이슬람 법학(jurisprudence)의 아랍어에 깊이 심취했으며, 카이로와 메카를 그의 세계의 지적, 영적 중심축으로 여겼습니다.
  • 지리적 및 문화적 통합의 증거: 그의 방대한 여행기인 리흘라(Rihlah)”는 아랍 문화가 제국의 국경을 넘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시입니다. 그는 여행하며 자신이 접한 이슬람 세계의 여러 지역이 언어(아랍어)와 문화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2. 세계화와 아랍 문화의 이동성 입증

이븐 바투타의 여행은 아랍 문명이 당시의 지배적인 정치 권력을 초월하여 문화적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 아랍어의 링구아 프랑카 역할: 그는 당시의 여행자들이 아랍어와 약간의 페르시아어, 튀르크어를 구사하며 여행할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아랍어가 광범위한 세계 공용어(lingua franca)로 기능했음을 입증합니다.
  • 지식의 확산: 그는 인도의 델리 술탄국 궁정에서 아바스조 칼리프의 후손인 학자를 만났는데, 이 학자가 노블레스 오블리주(pomp of pedigree)를 자랑하며, 델리 술탄이 아랍인들을 우대함으로써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려 했음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아랍계 혈통과 문화가 정치적 권력이 없는 상황에서도 정통성의 원천으로 기능했음을 보여줍니다.
  • 지적 호기심의 상징: 그는 지식에 대한 탐욕스러운 글쟁이(greediest glutton)로서, 지식과 현안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광범위하게 여행했습니다 [364–365].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아랍 세계가 정치적 중심지 외의 지역으로 확장되는 ‘비공식적인 문화 제국’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3. 통일성의 역설과 문화적 쇠퇴에 대한 통찰

이븐 바투타는 아랍 세계의 분열된 현실과 문화적 쇠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기록했습니다.

  • 고향의 쇠퇴: 그는 몽골 침략 후 쇠퇴한 바그다드를 방문하여, 한때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 도시가 “유명한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그는 아랍어의 발상지이자 학문의 요람이었던 알-바스라(al-Basrah)에서 설교자가 심각한 문법적 오류를 범하는 것을 보고 아랍어 학문의 쇠퇴에 충격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아랍어가 해외에서는 확장되고 있었지만, 본토에서는 쇠퇴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 개인의 이동성과 가족의 단절: 그의 삶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이동 기술(hijrahs of steam)이 가속화한 개인주의와 가족 단절의 예시이기도 합니다. 그는 자신이 여러 아들과 딸들을 방치하고 왔음을 기록했으며, 특히 델리에서 맡긴 아들의 안부를 알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381–382].

요약하자면, 이븐 바투타는 아랍 세계의 정치적 일식기에 나타나 아랍 문화의 지리적 영토가 얼마나 광활하며 강력한 생명력을 가졌는지를 보여준 핵심 인물입니다. 그의 여행 기록은 아랍어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의 부침을 넘어설 수 있는 정체성과 문명의 지속적인 기반이었음을 입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