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09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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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지어 ‘건전한 수준의 이직률(healthy turnover)’조차 부족해

최근 미국의 주요 언론은 흥미로운 노동시장 변화를 보도했습니다. 팬데믹 직후 한때 ‘대퇴사(Great Resignation)’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인력 이동이 일어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과감히 회사를 떠나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나섰고, 덕분에 남아 있던 이들에게도 빠른 승진과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나, 지금은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안한 경제 환경 속에서 직장인들이 자리를 지키려는 성향이 강해지고, ‘이직 붐(job hopping)’은 잦아들었습니다. 비단 미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가장 경제가 활력있다는 미국까지 이런 현상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젊은 직장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회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움직임의 시대’에서 ‘멈춤의 시대’로

2021년과 2022년 무렵,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기업들이 인력 확보 경쟁을 벌였습니다. 온라인 회의가 일상이 되고, 원격 근무가 확산되던 시절,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도 금세 새로운 직장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경기부양금과 저축 덕분에 당장 생계가 불안하지 않았던 것도 사람들의 결단을 가볍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물가 불안, 경기 둔화, 그리고 기업의 구조조정 소식이 이어지면서, 많은 직장인들이 “이직은 커녕, 지금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리자들 역시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높은 이직률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건전한 수준의 이직률(healthy turnover)’조차 부족해 팀을 재활성화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이는 한국의 현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노후를 앞둔 세대가 직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도 결국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불확실해진 상황에서, 눈앞의 일자리를 포기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 되기 때문입니다.

승진 정체와 ‘붙박이 직원’ 문제

기사를 통해 드러난 또 하나의 문제는 승진 정체입니다. 누군가가 자리를 비워야 다른 이가 그 자리를 메우며 성장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리를 지키기만 하면, 승진 기회는 줄어들고 동기 부여도 떨어집니다.

우리 사회의 시니어 세대도 과거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바람이 불 때, 많은 중년 직원들이 승진 기회를 잃고 그대로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 결과 기업 내부는 경직되었고, 젊은 인재들은 성장 통로가 막혔습니다. 결국 조직 전체의 활력이 약화되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다시 나타나는 ‘붙박이 직원’ 현상은, 세대와 국가를 넘어 반복되는 노동시장의 숙제임을 보여줍니다. 시카고대학교의 버지니아 미니 교수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약 3,000명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은 삶에서 분명한 목표와 목적을 찾지 못했을 때 이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직원들은 “억지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위험 회피와 인간의 본성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히 경제적 요인만이 아닙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두려워합니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욱 강해집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중장년층은 젊은 세대보다 새로운 직업이나 창업에 도전하는 비율이 낮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도전을 감행한 중장년 창업자의 성공률은 오히려 젊은 창업자보다 높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경험과 인맥, 현실 감각이 그들의 강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위험 회피 성향을 완전히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삶의 활력과 기회를 갉아먹는다면 문제입니다.

기업과 사회의 과제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직률이 낮아진 것은 겉으로는 안정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낮은 이직률은 ‘정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조직은 적정한 순환을 통해 신진대사가 이뤄져야 합니다. 마치 인체의 혈액순환이 막히면 건강이 나빠지듯, 직장 내 인력 순환이 멈추면 조직 전체가 무기력해집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합니다. 젊은 세대가 기회를 얻지 못하고, 중장년층이 불안 때문에 자리를 지키기만 하는 구조는 세대 간 갈등을 낳고, 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립니다.

한국 사회 역시 빠른 고령화와 저성장 속에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안정과 도전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을지가 관건입니다.

이 시대의 멘토인 시니어가 사그라드는 경제의 활력을 되살리는 지혜를 통해 극복해 나가는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